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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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되는 이유와 안되는 이유

2013년 8월 ‘우버’(Uber) 차량을 탔다. 사회부 경찰팀에서 일할 때다. 우버 서비스가 허가도 없이 국내에서 운영 중이라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애플리케이션을 설치하고 신용카드 번호를 등록하자 차량이 배정됐다. 곧 서울 영등포경찰서 인근에 고급 세단이 멈춰섰다.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차에서 내려 정중히 인사하고, 재빠른 움직임으로 차를 빙 돌아 뒷문을 열었다. 차 안에는 생수와 간식, 경제 관련 서적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중년 남성은 다시 차에서 내려 차량 뒷문을 열고 정중히 인사했다. 차 안의 은은한 향기와 기사님의 ‘적당한’ 친절함이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박영준 경제부 기자

좋은 기억과는 별개로 우버 서비스는 엄연한 불법이었다. <불법택시 ‘우버’ 영업… 당국은 “금시초문”>이라는 제목으로 우버 서비스와 정부를 날세워 비판했다. 보도 이튿날 국토교통부는 “우버의 영업행위는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에서 금하고 있는 유상운송, 운전자 알선행위 등에 저촉되는 것으로 보인다. 택시업계의 업역 침해로 운송질서를 문란하게 할 소지가 크다”고 보도자료를 냈다. 보도가 나가고 2년 뒤, 우버 등 모바일 앱을 이용한 운송행위 알선을 처벌하는 내용의 ‘우버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했다. 우버 서비스를 막는 데 일찌감치 일조한 셈이다.

5년 전 기억이 떠오른 건 최근 귀가 택시에서 만난 기사님의 ‘인사’ 이야기 때문이다. 택시에 탑승한 뒤 목적지를 말하자 기사님이 대뜸 “그럴 줄 알았어요. 목적지 가까운 사람들은 인사를 깎듯이 해요” 하는 거다. 늦은 시간 승차거부 없이 승차를 허락해 준 기사에게 ‘감사합니다’ 인사한 것을 두고서 한 말이다. 직업상 택시를 자주 이용하면서 수많은 기사님들로부터 온갖 형태의 승차거부와 불친절을 경험했지만 ‘목적지가 가까우면 인사를 깎듯이 한다’는 말은 또 새로웠다. 대꾸할 틈도 없이 “멀리 갈 것처럼 보여서 태웠는데, 인사하는 것을 보고 ‘아 틀렸구나’ 했다”면서 씁쓰레했다. ‘정중히 인사하는 기사님’과 ‘깎듯이 인사해야 하는 기사님’ 사이의 간극이 크고, 좀처럼 좁혀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 중의 하나인 차량공유 서비스 도입이 택시업계의 반발에 진통을 겪고 있다. 5년 전으로 돌아가 다시 우버를 탄다면 어떻게 기사를 쓸 수 있을지 선뜻 판단이 내려지지 않아 규제개혁의 어려움을 조금이나마 실감한다.

지난 정부에서 규제개혁 업무를 담당했다는 정부 관계자와 나눴던 대화가 인상적이다. “같은 정책이라도 정부가 정책을 막으려고 하면 ‘안 되는 이유’를 100개 만들어 낼 수 있고, 되게 하려면 ‘되는 이유’ 100개를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떻게 접근하느냐의 문제라는 것이다. 정부가 ‘어디까지는 수영 가능, 어디부터는 수영 금지’해도 될 것을, 일단 ‘수영 절대 금지’ 팻말을 붙이고 본다는 것이다. 허가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일단 비판하고 봤던 기자도 예외가 아니다. 정부는 지금 차량공유 서비스 정책 발표를 앞두고 기존 운수업계와의 상생방안을 마련 중이다. ‘안 되는 이유’, ‘되는 이유’가 아니라 ‘잘 되는 이유’를 만들길 기대해본다.

박영준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