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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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땐뽀걸즈’와 함께 웃고 울기

“우리가 승진할라고 선생 하는 거 아이다. 맞제? 아이들 가르치려고 (교사)하는데…애들 잘 가르쳐서 사람 되게 만들어가지고 졸업시켜주는 게 우리(교사들) 임무다.”

2016년 경남 거제의 한 횟집. 거제여자상업고등학교 이규호(52) 체육교사는 소주 한잔을 나누던 젊은 후배 교사가 “승진은 이제 생각 접은 거예요?”라고 묻자 이렇게 답한다. 거제여상의 댄스스포츠 동아리 지도교사이기도 한 그는 후배가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 안 들었어요? 댄스”라고 할 때에도 “댄스는 웃으면서 가르칠 수 있다 아이가, 댄스를 통해 학교 재밌게 다니는 애들 많다”며 빙그레 웃는다. 
이강은 사회부 차장

최근 한 통신사 영화채널을 통해 본 ‘땐뽀걸즈’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다. 이 영화는 촬영 당시 고2였던 거제여상 ‘땐스 스뽀츠’반 학생 8명과 담당 교사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감독 이승문·KBS PD)로 지난해 9월 개봉됐다. 이 감독은 당초 거제시의 조선업 몰락과 관련한 다큐멘터리를 준비하다 우연히 거제여상을 들른 뒤 땐뽀걸즈로 기획 방향을 틀었다고 한다.

카메라는 ‘2016 전국상업경진대회’ 참가를 준비하는 이 교사와 땐스반 학생들의 일상, 생활터전인 거제의 풍경을 있는 그대로 비춘다. 보기 안쓰럽거나 먹먹한 장면도 적지 않다. 가족 해체로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야 하거나 어린 남동생들을 보살펴야 하고, 가망이 없는 조선소를 나와 새 일자리를 찾아 떠나는 아버지와 헤어져 혼자 지내게 된 학생 등 청소년들이 겪는 삶의 고단함과 실직 위기에 짓눌린 거제 노동자들의 그늘진 표정 등을 마주할 때다. 마치 한국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압축한 판화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제목처럼 영화 자체는 밝고 경쾌하다. 재미와 감동도 골고루 버무려져 있다. 일찌감치 공부와 담을 쌓거나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고 삶의 의욕마저 늘어진 소녀들이 춤을 통해 활력을 얻고 우정을 쌓으며 성장해가는 모습이 달달하다. 땐스반원인 박지현양은 스크린 속에서 “솔직히 지각도 조퇴도 결석도 많이 했는데 이제 동아리 하고 나서 그런 거 거의 없어요. 있잖아요. 사람이 해야 된다는 게 있을 때의 뿌듯함?”이라며 환하게 웃는다.

여기엔 이 교사의 공로가 크다. 그는 댄스만 잘 가르치는 ‘쌤’이 아니다. 제자들을 살가운 딸이나 친구처럼 대하면서 편하게 소통하고 세심하게 챙겨준다. ‘요즘에도 정말 이런 선생님이 있나’ 싶을 정도다. 이렇게 하나가 된 그들은 우여곡절 끝에 전국대회 무대에 오르고 은상을 받자 환호성을 지른다.

연말 교내 축제에서 학생들이 몰래 준비한 감사의 영상메시지가 나오는 장면은 영화의 백미다. “그냥 땐뽀하게 한 거, 못해도 잘 하는 게 아닌데도 맨날 열심히 하라고 봐줘서 그거 고맙고…”, “헤어질 때 아쉽겠지만 슬픈 마음으로 말고 기쁜 마음으로 멋지게 헤어질 수 있도록. 사랑해요.” 어리둥절해하던 이 교사는 끝내 눈물을 터뜨리고 모두의 가슴을 적신다.

‘엄지 척!’ 할 만큼 보석 같은 영화였다. 그런데 내건 극장이 드물어서 그런지 누적 관객수가 7000명도 안 됐단다. 학부모, 교사, 정부 당국자, 정치인 등 이 영화를 꼭 봤으면 하는 어른이 많은 듯한데. 지금도 늦지 않았다.

이강은 사회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