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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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예년만 못한 유커 발길… 여전히 사드 탓?

얼마 전 지방 문화축제를 구경하다가 마음이 착잡해지는 광경을 목격했다. 몇 사람만 지키고 있는 공연장에서 일사불란하게 ‘박수’를 치고 있는 수십 명의 군인이 눈에 들어왔다. 초점을 잃은 눈, 굳은 표정, 기계적인 동작만 반복하고 있는 이들은 한눈에 봐도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끌려온 관객’이었다. 사전홍보가 잘 안 된 탓도 있었겠지만 축제라고 부르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지역 설화’를 모티브로 한 이벤트는 연결고리를 찾기 힘들었다. 전국 모든 지역의 문화축제에서 만나볼 수 있는 특색 없는 지역장터도 실망스러웠다. 굳이 이곳을 찾지 않아도 된다면 누가 돈과 시간을 쓰며 찾아오겠는가.

관광명소로 알려진 곳을 찾았다가 실망한 경우는 사실 한두 번이 아니다. ‘일상탈출’을 꿈꾸며 장시간 차를 타고 도착했는데, 창문 너머 익숙한 프랜차이즈 간판부터 시야에 들어올 때면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든다. 어디선가 본 듯한 지역 마스코트, 어디서나 할 수 있는 활동을 ‘이색체험’이라 내세우는 뻔뻔한 체험관, 비슷한 물품들을 파는 익숙한 외형의 상점들을 지나다 보면 ‘짧게라도 해외여행을 떠나야 했는데…’ 하는 후회가 자연스레 밀려온다.

김라윤 경제부 기자
이 때문일까. 실제로 한국의 여행수지는 몇 년째 적자를 못 벗어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0월 우리나라의 여행수지는 마이너스 9억5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적자폭은 소폭 줄어들었지만 흑자가 급증하고 있는 인근 국가들과 비교하면 초라한 수치다. 지난해 외래방문객이 전년 대비 19.3%(2869만명) 증가한 일본의 관광산업 성장세가 무섭다. 2011년 600만2200명에 불과했던 외래 관광객 숫자는 지난 6년 새 5배 가까이 증가했다.

일본 관광붐이 되살아난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해 겨울 일본 홋카이도로 출장을 갔다가 인연을 맺게 된 장경재 교수(홋카이도 대학, 미디어 투어리즘 전공)는 일본의 성공 요인으로 ‘지역 고유의 매력 발견’을 꼽았다. 장 교수는 “일례로 아름다운 경치로 유명한 농촌마을 비에이정(町)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전에 먼저 지역주민, 지역정부, 대학연구소가 몇 년간 소통을 하며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해당 지역의 문화적 원형과 매력을 정확하게 발견하기 위해 노력했다”며 “농촌마을 주민들에 대한 심층인터뷰와 워크숍 등을 수시로 개최한 끝에 ‘농촌체험형 관광상품’을 개발했다”고 전했다. 지역 특유의 매력을 찾아내기보다는 다른 곳의 매력을 모방하는 데 급급한 한국식 관광개발과는 차원이 다르다.

일본 이시카와현의 가나자와시 히가시차야 찻집거리는 전통가옥 보존지구로 지정돼 수십 년째 건물 원형을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명색이 관광지를 조성한다면서 옛집과 골목길을 없애고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 도로를 깔고 있는 한국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관광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성형수술’들로 인해 한국의 관광지는 고유의 매력은 잃고 유사품으로 전락해 가고 있다.

며칠 전 만난 한 중소 화장품 제작업체 대표는 “해외 바이어들이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 어디를 데리고 가야 한국을 느낄 수 있을지 너무나 고민이 된다”며 “한국 관광산업이 죽어가고 있는 것을 두고 사드 여파만 탓할 때가 아니다”고 꼬집었다.

김라윤 경제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