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민감한 사회 이슈를 다룬 곡들이 연일 화제다. ‘일부’에서 불붙은 남녀 혐오 현상을 겨냥해 래퍼 산이는 페미니스트, 6.9㎝, 웅앵웅 등 3부작을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했다. 그런가 하면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래퍼 도끼 역시 날을 세웠다. 그는 모친의 20년 전 채무로 ‘빚투’ 논란이 일자, 약 1000만원의 빚을 두고 “내 한 달 밥값과 비슷하다”며 고의성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으나 상대적 박탈감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된서리만 맞았다. 이에 말조심이란 곡을 발표해 ‘내가 지은 죄가 있다면 우리 엄마 뒤를 지킨 것뿐’이라며 정면 대응했다.
안병수 문화체육부 기자 |
힙합이 생소했던 시절에는 파급력이 오히려 더 셌다. 서태지와 아이들의 컴백홈은 가출한 수많은 영혼들을 귀가시켰고, 교실 이데아는 주입식 교육에 한 방 어퍼컷을 먹였다. 그의 바통을 이어받은 DJ DOC는 ‘삐걱삐걱’이란 곡에서 탁상공론만 일삼는 정치인보다 ‘강아지’가 낫다고 했다. 인기 가수라는 사회적 지위와 랩 가사 특유의 날카로움을 적절히 활용한 예다. 외국의 경우는 더욱 살벌하다. 톱스타 에미넴은 모시(Mosh)라는 노래에서 당시 조지 워커 부시 미국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 자체가 대량살상무기(WMD)”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당시 국민적 반대에도 이라크전을 밀어붙인 부시 대통령은 아연실색했다.
이처럼 흥행 공식을 부순 노래들은 사회에 긍정적인 기제로 작용한다.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을 수면 위로 올려 대리만족을 선사하고, 현상을 멋대로 호도하는 대신 직시하게 한다. 건전한 공론의 장을 깔아주는 셈이다. 유일하게 ‘내 할 말을 대신 해주는’ 매개체인 힙합이 ‘분출구’로서의 역할을 등한시한다면 사회 토론은 자연히 음지화될 수밖에 없다. 구심점이 없는 개인들이 뭉치게 된다. 그러나 자기 입맛에 맞는 사람들끼리 쏟아낸 집단지성은 비뚤어지기 십상이다. 사회를 좀먹는 집단들이 더 불어나기 전에 힙합이 예전의 ‘발톱’을 다시 세웠으면 하는 이유다.
래퍼 산이는 ‘페미니즘 3부작’에 이어 기레기레기라는 곡으로 황색 저널리즘을 신랄하게 깠다. 틀린 말은 아니다. 대중의 구미를 당기는 가십거리 생산 위주로 흐르는 게 언론의 슬픈 현실이다. 경각심을 일깨워줘 고맙다. 불과 며칠 전 한 취재원에게 “제목 장사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 유구무언이다. 기회가 된다면 해당 주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다퉈 보는 건 어떨까. 참고로 기자의 주량은 소주 2병 반이다.
안병수 문화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