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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업고 독립운동한 여성들 공로 인정받아야” [ 차 한잔 나누며]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 / 독립군 물심양면 지원·가정 건사 / 어머니·딸들의 희생도 독립운동 / 동료기생 모아 참여한 김향화 등 / 참여 계층·활동영역도 폭 넓어 / 10년 자료 모아 200명 DB 집대성 / 인정 기준 세분화·기록 발굴 시급
“독립운동을 할 땐 전 가족이 움직입니다. 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면 어머니도, 아이들도 독립투사가 되죠. 아이 업고 식구들 건사하며 독립운동했던 그 여성들의 공은 제대로 인정받고 있을까요?”

지난 2일 서울 영등포 연구실에서 만난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은 1945년 7월, 해방 한달 전 촬영된 광복군 제3지대 흑백사진 한 장을 보여줬다. 갓난아기를 안은 여성이 맨 앞줄에 앉아 있었다. 올해 94세의 유순희 지사(1995년 애족장)다. 광복군 구호대원이었던 유 지사는 임시정부와 연결된 지하공작원이기도 했다. 아이를 업고 정보작전에 나섰다. 그의 남편은 같은 광복군이었다.

일본어문학 전공인 이 소장은 일본을 오가며 여성 독립운동가의 존재를 자각하게 됐고, 자료가 거의 없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2009년부터 10년째 관련 자료를 수집해왔다. 전국 각지는 물론 미국 하와이, 일본까지 찾아가 생존 독립운동가 혹은 후손을 만났다. 이를 바탕으로 헌정시를 짓고 매년 20명씩 묶어 책을 내니 200명의 데이터베이스가 만들어졌다. 경북 안동에서 ‘독립군의 어머니’로 불렸던 허은 지사(2018년 애족장)는 그의 작업에는 2012년 이미 포함됐지만, 지난해에야 공식 서훈을 받았다.
이윤옥 한일문화어울림연구소장이 지난 2일 서울 영등포구 연구실에서 세계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 소장은 “평범한 여성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스스로의 방식으로 했다는 점이 여성 독립운동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2019년은 3·1 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인정 기준을 개선하고 여성 독립운동가 60명에게 서훈을 새로 추서해 여성 독립유공자는 357명으로 늘어났다. 하지만 전체 독립유공자 1만 5180명 중 여전히 2.4%에 불과하다.

“상식적으로 맞지 않죠. 독립운동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요.” 누군가의 딸, 배우자, 어머니였던 식민지 조선의 여성들은 남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주변의 영향을 받아 자각하고, 독립운동의 조력자로 출발해 때로는 주역으로 나섰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생존 독립유공자 중 하나인 오희옥 지사(1990년 애족장) 가족이 대표적이다.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오 지사 가족(아버지 오광선 장군·1962년 독립장, 어머니 정현숙 지사·1995년 애족장, 언니 오희영 지사·1990년 애족장) 모두 유공자지만 서훈 추서 시기는 제각각이다. “여성들은 1990년대에서야 서훈을 받기 시작하는데, 어머니는 딸들보다 더 늦어요. 물론 아버지 먼저 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족 내에서도 있었지만 너무 늦죠.”

이 소장은 여성의 독립운동이 그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이유로 일정 기간의 수형기간, 공적 기록 등을 요구하는 ‘천편일률적 독립운동 인정 기준’을 꼽았다. “2, 30년간 집 밖도 못 나가 보고 독립군 밥 먹이고, 옷 해 입힌 허은·이은숙(2018년 애족장, 우당 이회영 선생 부인) 지사의 희생은 왜 독립운동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 소장은 “독립운동에 참여한 여성의 계층과 활동 영역은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다”고 설명했다.
유관순 지사(1962년 독립장)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만세운동에는 기생이었던 김향화(2009년 대통령표창) 지사도 동료 기생 30명을 모아 참여했다. 해녀 출신 부춘화(2003년 건국포장) 지사는 일제 착취에 맞서 해녀조합을 결성하고 노동운동을 독립운동과 연결시켰다.남성과 같은 무장훈련을 받은 여성 광복군도 있다.

지난해 서훈 기준이 일부 개선돼 여성 60명이 유공자 지정을 받았지만 더 속도를 내지 않으면 이미 사라져가는 자료 소실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라는 게 이 소장의 우려다. 북한 지역에서 활동해 자료를 구하기 어려운 여성 독립운동가 발굴도 숙제다.

“왜 해방 70년이 넘도록 우리는 여성 독립운동가 하면 유관순 지사만 알고 있을까요?” ‘남쪽에는 유관순, 북쪽에는 동풍신’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3·1운동 핵심 인물이었던 동풍신 지사(1991년 애국장)에 대한 기록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무관심, 기존 자료에만 기대는 안일한 연구 태도, 보훈행정의 편의주의가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무지를 초래했습니다.” 지난 10년 여성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따라온 이 소장의 일침이다.

홍주형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