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티켓 1장 130만원…간절한 팬심 악용하는 '플미충' [S스토리]

매크로 등 동원 눈깜짝할 새 사재기 / 중고사이트에 3∼4배 붙여 ‘호객글’/ 팬들 “티케팅 프로그램 사겠다” 분통
매크로 등 불법 프로그램을 동원하는 암표상들이 온라인상에서 활개를 치면서 공연예매 자체를 지레 포기해 버리는 공연애호가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암표상들이 요구하는 웃돈이 부담돼서 좋아하는 공연을 관람하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세계일보가 뮤지컬 공연장을 찾은 관람객(반기별 공연관람 횟수 2회 이상 관람객 대상) 22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를 4일 분석한 결과다. 온라인 암표 거래를 금지하는 법안들이 국회에서 장기 계류 중인 상태에서 매크로 사용 등을 엄격히 규제하는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12만원짜리 공연 95만원에 달라는 암표상과의 카톡
◆비싼 암표값에 관람 포기하는 공연애호가들

이번 조사에서 많은 공연애호가들이 정상적인 공연예매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응답자의 64%가 ‘불법 프로그램을 동원하는 암표상들 때문에 공연예매를 지레 포기할 때가 있다’는 항목에 대해 ‘매우 그렇다’(25%)와 ‘그렇다’(39%)로 답변했다. ‘별 영향이 없다’고 응답한 비율은 20% 수준에 불과했다. 지난 2일 뮤지컬 팬텀 공연장을 찾은 이모(40·여)씨는 “언제부턴가 정가의 30~50% 수준의 프리미엄이라면 차라리 그 돈 내고 맘 편히 보자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며 “암표를 사는 일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별 도리가 없다”고 푸념했다.
지나친 프리미엄이 부담돼서 공연관람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63%에 달했다. 지난 1일 인기 뮤지컬 ‘엘리자벳’ 공연장을 방문한 신모(34·여)씨는 “좋아하는 배우 조승우가 출연하는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표를 예매하기 위해 가족들까지 전부 나서 데스크탑과 노트북, 휴대폰을 통해 계속 시도했지만 3분도 되지 않아 조승우가 출연하는 회차들만 전석 매진됐다”며 “그런데 10분쯤 뒤에 ‘중고나라’ 등에 그 뮤지컬 표를 웃돈을 붙여 양도하겠다는 글이 수십 개 올라왔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런 일을 겪고 나서는 공연을 보고 싶다는 마음조차 사라졌다”고 씁쓰레했다.

‘합법적인 티켓 재거래’ 사이트를 표방하는 ‘티켓베이’에서는 조승우가 출연하는 ‘지킬 앤 하이드’ 회차의 VIP석(정가 15만원)은 날짜와 좌석에 따라 22만∼40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해당 사이트에서 가수 아이유의 콘서트 티켓(12만원가량)은 27만5000~42만5000원, 아이돌 워너원의 콘서트 티켓(정가 12만원)은 30만~69만9000원, 팝스타 ‘에드 시런’의 내한공연 티켓(정가 11만~13만원)은 42만원까지 거래되고 있다.
이렇다 보니 직접 티케팅 매크로 프로그램을 돌리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 유명 예매사이트의 ‘티케팅 매크로’ 가격은 1만8000~2만7000원선으로 온라인상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기자가 직접 포털사이트에서 ‘티케팅 매크로’를 검색하자 ‘초보자들도 쉽게 이용 가능하도록 매크로를 제공하겠다’는 게시글이 무더기로 떴다.

대표적인 티켓 예매처인 인터파크 관계자는 “암표상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사이트 차원에서도 매크로 구동을 어렵게 만들고, 매크로를 돌리는 정황이 발견되면 즉각 블랙리스트에 올리는 것은 물론 예매절차도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며 “최근엔 소속사 차원에서도 1인당 2장으로 판매를 제한하고 본인 확인절차를 강화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그 정도로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 프로그래머들이 매크로 프로그램을 끊임없이 업데이트시키며 불법 티케팅 프로그램을 팔고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 암표 문제 방치하고 있는 정부와 국회

대다수 공연애호가들은 매크로를 활용한 암표상들이 공연시장에 미치는 해악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하면서 ‘예매 시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금지’ 법안을 시급히 통과시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암표상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라는 항목에서 응답자들은 10명 중 8명꼴로 ‘매우 그렇다’(32%)와 ‘그렇다’(44%)고 답변했다. ‘그렇지 않다’(7.3%)거나 ‘전혀 그렇지 않다’(4.5%)로 응답한 비율은 합쳐서 12%에 머물렀다. 전문암표상이 공연시장에 미치는 해악을 묻는 항목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매우 심각하다(37%)’, ‘심각하다(45%)’고 응답한 비율이 82%에 달했다.


공연애호가들이 꼽은 시급한 암표근절 대책(중복응답)은 ‘예매 시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 엄격 금지’(131명 응답)였다. 이어 ‘높은 과태료 부과’(118명), ‘한꺼번에 살 수 있는 표수의 제한’(66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일부는 징역형 이상의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49명)거나 암표신고자에 대한 보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40명)고 답했다. 온라인 암표상에 대한 제재와 관련해 최소 벌금액을 묻는 질문에는 ‘1000만원 이상’이 21%로 가장 높았다. 이어 ‘500만원 이상’(20%), ‘3000만원 이상’(18%), ‘300만원 이상’(17.3%), ‘60만원 이상’(13.2%) 순이었다.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수민 의원(바른미래당)은 “작년 국정감사 등 정기국회에서 공연 암표로 인한 시장 왜곡과 국민피해의 심각성을 지적했지만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손을 놓고 있다”면서 “국무총리 산하에 범정부 차원의 태스크포스팀(TF)을 꾸리는 등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연 관계자들은 국회 차원의 법 개정 노력도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국회에는 총 7개의 암표 근절 관련 법안들이 무기한 표류 중이다.

한편 암표매매가 기승을 부리면서 오프라인상에서 경찰에 적발된 암표 건수도 2015년(125건)에서 2017년 77건으로 줄었다가 지난해 11월 기준 106건으로 대폭 늘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오프라인은 위법이지만 온라인 암표 거래는 단속 대상이 아니라서 관련 데이터가 전혀 없는 실정”이라고 밝혔다.

김라윤 기자 ry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