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메뉴 보기 검색

피할 수 없다면 ‘보호막’ 씌워라

‘미세먼지 차단’ 화장품 효과는 / 미세먼지, 피부재생 막고 염증 유발 / 검버섯 등 발생률도 높여 ‘미용의 적’ / 화장품 업계 기능성 제품 출시 봇물 / 효과 가늠할 지수 없어 선택 어려움 / 이온·실리콘막 활용 땐 흡착방지 효과 / 깨끗하게 세안·보습 유지 가장 중요
미세먼지 농도가 치솟는 날이면 막연한 불안감이 올라온다. 마스크를 쓰고 보습제를 발라도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호흡기·심혈관 질환에 대한 걱정은 물론 피부 건강도 은근 신경 쓰인다. ‘피부 무장’은 얼마나 해야 할지, 평소처럼 세안해도 문제없을지 아리송하다. 뷰티업계에서는 ‘이때다’라는 듯 관련 제품을 쏟아내지만 왠지 미덥지 않다. 미세먼지가 피부에 미치는 악영향은 어느 정도인지,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전문가에게 알아봤다.
◆미세 오염물질, 피부 재생 둔화… 검버섯도 증가

학계에 따르면 미세먼지는 피부 염증 반응을 악화시킨다. 피부 재생을 둔화시키고 검버섯 발생률을 높이는 등 미용에도 해롭다. 다만 지나치게 ‘피부 염려증’을 가질 필요는 없다. 중앙대 피부과 김범준 교수는 “피부에서도 미세먼지 침투에 약한 부위가 코 주변, 입술이 갈라져서 터진 부분, 눈 주변과 두피”라며 “빗자루에 기름이 묻으면 먼지가 잔뜩 붙듯이, 피지가 많은 부위는 미세먼지가 흡착되기 쉽고 잘 떨어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또 “여드름이 난 곳, 피부건조증이나 지루피부염으로 틈이 생긴 부위에 미세먼지가 들어오면 염증 물질로 남아 트러블을 유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특히 털이 많은 두피는 다른 부위보다 미세먼지가 잘 붙는다. 김 교수는 다만 “정상적 피부에서는 미세먼지가 흡착되더라도 잘 씻어내면 대부분 큰 문제가 없다”고 강조했다.

미세먼지가 피부 미용의 적이라는 연구 결과는 속속 나오고 있다. 독일 뒤셀도르프의 라이프니츠-환경의학연구소(IUF)는 공장에서 배출하는 대기오염물질이 얼굴 검버섯 증가와 관계있다는 연구 결과를 2016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평균적으로 질소산화물 노출이 10㎍/㎥ 증가하면 얼굴 검버섯 증가율이 약 25%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초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짙은 지역에 거주한 70, 80대 여성은 공기가 가장 깨끗한 곳에서 산 여성보다 이마에 잡티가 생길 위험은 22% 높았고, 뺨에 잡티가 생길 위험은 20% 많았다. 또 입가에 팔자 주름이 생길 위험도 4% 높았다. 아시아 여성의 검버섯 증가율은 백인 여성보다 조금 더 높았고, 50세 이상 여성에서 두드러졌다. 대기오염물질은 대체로 얼굴 외 다른 부위 검버섯엔 영향을 주지 않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팀은 독일 백인 여성 806명과 중국 장쑤(江蘇)성 타이저우(泰州) 거주 한족 여성 743명을 대상으로 질소산화물(NOx), 탄소화합물 등 대기오염물질이 피부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상하이푸단의과대학 리퀴아오 박사팀이 지난해 발표한 연구에서도 PM2.5가 각질형성세포의 성장과 증식을 억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피부가 잘 기능하도록 작용하는 표피 분화 단백질인 로리크린, 필라그린의 형성도 둔화시키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울러 피부 염증반응은 악화시켰다. 

◆피부막·이온화 기술 등 활용… 표준 지수 개발 첫걸음

그렇다면 화장품이 미세먼지의 악영향을 막아줄 수 있을까. 정답은 ‘제대로 된 제품을 고른다면 어느 정도 그렇다’이다. 다만 아직 소비자가 믿고 구매할 미세먼지 차단지수가 없는 점이 한계다. 자외선의 경우 SPF·PA 등을 보고 화장품의 성능을 가늠할 수 있다. 그러나 미세먼지에 대해선 아직 세계적으로 표준화된 항오염 지수가 없다. 김 교수는 이를 춘추전국 시대에 비유했다. 그는 “현재 미국과 유럽 회사별로 각자 안티폴루션 지수를 제안하고 있다”며 “미세먼지 차단 효과는 평가 잣대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에, 정부가 학계·업계의 요구를 받아들여 소비자가 믿고 쓸 수 있는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어느 방법이 더 정확할지 검증하고 표준을 정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전했다.

피부를 미세먼지로부터 보호하는 데는 애초에 들러붙지 않게 하거나 외출 후 깨끗이 씻어내는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흡착방지 기술로는 이온이나 실리콘막 활용 등 다양한 방법이 모색되고 있다. 김 교수는 “음이온과 음이온, 양이온과 양이온이 서로 밀어내는 기술을 이용해 미세먼지가 덜 붙게 할 수 있다”며 “피부 보호막의 경우 수증기가 덜 끼게 자동차 유리를 코팅하듯 피부에 보호막을 만들어 미세먼지가 들러붙는 걸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흡착 방지 효과가 들어간 화장품이 미세먼지를 100% 다 막아주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효과는 있다”며 “차에 코팅하고 광택 내면 안 긁히진 않아도 덜 긁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밝혔다.

흡착 방지와 세정 외에 진정 효과도 연구되고 있다. 김 교수는 “점막이나 건조해서 갈라진 곳, 아토피·지루피부염이 있는 부위에 미세먼지가 침투해 트러블이 발생하면 이를 진정시키거나 피부 장벽 기능을 복구시켜주는 기능이 연구되고 있다”고 전했다.

그렇기에 현시점에서 미세먼지 관련 화장품을 구입한다면 연구·개발에 투자를 많이 하는 기업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낫다. 집에 돌아오면 두피를 포함해서 깨끗하게 씻고 보습을 철저히 하는 것은 기본이다. 뒤셀도르프 대학 연구를 이끈 장 크루트만 박사 역시 주기적 세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다만 지나치게 세정력이 강한 제품은 오히려 피부 보호막을 파괴할 수 있기에 적당한 제품을 골라야 한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