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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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왕의 남자

권력에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다. 그 힘은 중력보다 강하다. 한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그 주위에 사람들이 파리 떼처럼 모이는 것은 그런 연유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때의 일이다. 제나라 재상 정곽군이 옛 친구와 만나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그가 정곽군의 깊은 신임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곧 그 친구의 집으로 뇌물이 답지했고, 그는 크게 부유해졌다. 하루는 정곽군이 측근에게 땀을 닦으라고 수건을 건넸더니 그에게 청탁과 뇌물이 쏟아졌다. 누구와 이야기를 하거나 수건을 주는 행위는 하찮은 일이다. 그런 일조차 권력자가 관여하면 권세로 둔갑한다.

정곽군의 일화를 기막히게 활용한 인물이 있다. 바로 흥선대원군 이하응이다. 대원군은 아들 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는 안동 김씨의 견제로 밥을 굶는 처량한 신세였다. 같은 마을 남산골에는 더벅머리 총각이 홀어머니를 모시고 농사를 지으며 살고 있었다. 대원군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총각은 대원군 집 대문 앞에 쌀을 갖다놓곤 했다.

드디어 고종이 즉위하자 대원군은 삼정승과 판서들을 자신의 집으로 모두 불렀다. 대원군은 하인에게 남산골 총각을 불러오게 하고는 그의 귀에 대고 뭔가 속삭였다. 총각은 불같이 화를 내더니 대원군의 얼굴에 침을 뱉고 나가버렸다. 이 광경을 본 정승과 판서들은 ‘도대체 어떤 인물이기에 대원군이 저런 수모를 당하고도 꼼짝 못 하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다음날 총각의 집 앞에는 고관대작들이 보낸 쌀가마와 비단이 산더미를 이뤘다고 한다. 권력을 잡은 대원군이 은혜를 갚기 위해 총각에게 일부러 화를 내도록 꾀를 낸 것이었다.

요즘 서른넷 청와대 5급 행정관이 육군참모총장을 카페에서 만난 일로 논란이 뜨겁다. “행정관이든 수석비서관이든 다 똑같은 대통령의 비서”라는 청와대의 해명이 뒤따랐지만 견지망월(見指忘月)이다. 손가락만 보지 말고 달을 봐야 한다. 50만 육군을 호령하는 4성 장군이 무엇 때문에 청와대 햇병아리의 요청에 선뜻 응했는지, 원인을 살펴야 한다. 원래 권력이 그렇지 않은가. 대통령이 ‘제왕적’이면 비서진은 ‘왕의 남자’로 행세하는 법이다.

배연국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