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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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우황청심원

담헌 홍대용이 청 연경에 간 것은 1765년이다. 영조 41년 때다. 그곳에서 만난 한족 학자인 엄성과 반정균. 헤어질 때에는 서로 눈물을 뿌렸다. 엄성은 대단한 인물이었다. 학식에서도, 도야에서도 홍대용에 뒤지지 않았다. 홍대용이 건넨 선물 중 하나는 우황청심원이었다.

노모에게 청심원을 드리고자 했던 두 한족 학자. 급히 약을 구하는 친구에게 한 알씩 덜어줘야 했던 두 사람은 청심원 한두 알을 더 구하기를 부탁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청심원은 아주 귀한 약입니다. 이곳 사람은 서 돈의 은을 주고도 오히려 가짜를 구해야 합니다.” 홍대용은 주머니에 남은 청심원을 모두 털어 주었다.

조선 사행단이 지나는 곳마다 듣는 말, “우황청심원을 구할 수 없을까요.” 신세 진 사람에게 건네면 눈물까지 글썽였다. 청의 관원에게도 쥐여 줬다. 그러면 풀리지 않던 일도 술술 풀렸다. 홍대용의 사행일기 ‘을병연행록’에 남은 내용이다. 그로부터 13년 뒤 청에 간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에도 비슷한 내용은 수없이 나온다.

조선의 우황청심원. 청을 뒤흔든 명약이다. 이 약은 언제부터 있었을까. 허준의 ‘동의보감’에 처방이 나온다. 동의보감을 편찬한 때는 광해군 2년, 1610년. 이때 처음 나온 걸까. 아니다. 이전에도 있었다. 없었다면 동의보감에 실릴 리 만무하다. 대량생산된 것은 1925년 조선무약이 창립되면서부터다. 솔표 우황청심원. 광동제약이 1973년부터 만든 우황청심원과 함께 쌍벽을 이루었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이 간 베이징의 동인당. 한때 중국에 간 사람이면 이 회사의 우황청심환을 사 왔다. 약재의 차이는 있지만 ‘원’과 ‘환’의 명칭 차이는 크지 않다. 가짜가 많았다. 중국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슷한 것 같다. 동인당은 1669년 만들어졌다. 1723년부터는 청 황실에 어약을 만들어 바쳤다. 어약에는 우환청심환도 포함된다.

김정은은 왜 동인당에 간 걸까. 한의약을 세계 명약으로 만들 생각을 했을까. 20∼30분 머물렀다고 한다. 브리핑 한 번 듣기도 힘든 시간이다. 실망스럽다. 동인당에 갔다면 그런 생각쯤은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