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만난세상] 3·1운동 ‘나만의 기억’ 갖는 법

“집회를 마친 다음 군중들은… 미리 작정했던 대로 각기 3000명씩 무리를 나누어 외국 영사관으로 향했다. 각국 영사들이 밖으로 나와 그들에게 인사를 보냈다.”

언론인 C W 켄달이 1919년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판한 ‘한국독립운동의 진상’에 담은 3·1운동의 한 풍경이다. 낯선 나라에서 벌어진 대규모 시위에 대한 긴장, 공포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다. ‘밖으로 나와 인사를 보냈다’는 건 마치 축제의 현장을 묘사한 것 같다. 지난해 말 3·1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 설립 100주년 특집기사를 준비하며 읽은 이 글은 지금까지 접한 3·1운동과 관련된 어떠한 정보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각인됐다. 그 치열한 현장에서 시위대와 외교관들 간의 인사라니….
강구열 문화체육부 기자

3·1운동, 임시정부 설립 100주년을 맞아 세계일보를 비롯한 언론들은 해가 바뀌자마자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고, 3월이 가까워지면 각종 기관, 단체들의 행사가 더해질 것이다. 무엇이 되었든 간에 한 세기 전 그날을 기억하고,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를 되새겨보자는 취지일 터다. 그렇다면 외부에서 제공하는 정보와 설명에만 의존하지 말고 자기만의 기억과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은 어떨까.

그런 방법으로 3·1운동, 임시정부와 관련된 1차 자료를 읽어보길 제안한다. 당시 생산된 유인물, 현장을 직접 본 이들의 증언을 모은 책과 국내외 언론 보도, 임시정부의 공문서 같은 것들이다. 이런 자료들을 정리한 책이 제법 있다. 기자는 ‘한국독립운동기사집’, ‘대한민국임시정부자료집’, ‘한국독립운동의 진상’ 등의 일부를 읽었다.

어렵고, 지루하지 않겠나 생각할 수 있는데 의외로 재미있다. 한 세기 전 글쓰기 방식이 지금과 달라 읽기에 불편한 점이 없지 않으나 당대의 자료만이 가진 생동감이 짙다. “약 20명의 여학생이 대열을 이루고 아무 소리도 외치지 않으며 조용히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E W 트윙)는 평화적 시위 방식의 구체적인 묘사이고, “서울에서 50마일 이내의 무수한 촌락들은 모두 불태워졌다. 시체 썩은 냄새가 코를 찌른다”(중국 국민공보 1919년 5월 19일자)는 일제의 야만적 탄압에 대한 직접적인 증언이다.

3·1운동, 임시정부를 어떻게 재정립할 것인가 하는 지금의 고민에 대한 단서도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3·1운동을 ‘3·1혁명’으로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의견이 분분할 수 있는 사안이지만, 당시의 자료를 보면 ‘3·1혁명’이란 호칭이 자연스럽다. 중국 중화신보는 3·1운동을 ‘맨손혁명’으로 부르며 “가장 유연하고, 문명하고, 유력한 하나의 혁명”이라고 평가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라도 3·1운동, 임시정부와 관련된 나름의 정보, 이미지를 갖고 있으며 편차가 있겠으나 대체로 전문가들의 취사선택과 해석을 거친 가공된 것들이다. 1차 자료는 이런 정보와 이미지들의 뿌리다. 본래의 모습을 알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한다면 100주년을 맞은 3·1운동, 임시정부 설립의 이미가 더욱 각별할 것이다.

강구열 문화체육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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