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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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빠른 연생’으로 살아보니

“제가 생일이 빨라서요.”

나이가 서열인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와 통성명을 할 때마다 늘 부연설명을 한다. 나이와 학번을 듣고는 ‘뭔가 안 맞는데’라는 눈빛을 읽을 때마다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다. “네, 제가 빠른 연생입니다.”
김선영 산업부 기자

기자는 7살이 되던 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생각없이 마냥 좋기만 하던 때라 ‘나는 왜 친구들보다 1년 먼저 학교를 갈까’라는 의문을 갖지 못했다. 당시 친구들의 생일파티는 3∼12월에 열렸지만 내 생일은 늘 새 학년이 시작되기 직전인 2월이었다. 즐거워야 할 생일파티가 이별을 아쉬워하는 ‘송별회’ 분위기일 때가 많았다. 그것만 빼고는 빠른 연생을 거의 의식하지 못했다. 학교를 1년 먼저 들어간 파급력을 본격적으로 느낀 건 대학에 입학하면서다. 재수나 삼수를 한 동기들이 있다 보니 같은 학번인데도 나이차가 3∼4살까지 났다. 자연스럽게 기자는 ‘막둥이’라는 별칭으로 불렸다. 동기들에게 ‘어린아이’ 취급을 받기도 했다. 나는 왜 여기서 막둥이가 돼야 하는가. 한편으론 억울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어쩔 수 없는 모순적 상황이었다. 대학 새내기 때는 술집 출입도 자유스럽지 못했다. 대학 입학하고서도 한동안은 청소년 보호법상 미성년자라서 술집에 갈 때마다 주민등록증 검사를 하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던 기억도 있다.

군대에서는 빠른 연생의 자격지심이 발동하기도 했다. 장교로 임관해 강원도의 한 부대에 소대장으로 배치받았을 때다. 20여명의 소대원 중 병장 계급의 2∼3명이 나보다 한 살 많았다. 엄밀히 말하면 같은 시기에 초등학교에 입학한 친구들이었다. 괜히 그들이 어린 소대장이라고 쉽게 대하지는 않을까 걱정됐다. 그래서 그들이 전역할 때까지 나이 이야기는 한번도 꺼내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실제 나이’, ‘학번’, ‘만 나이’까지 서로 다른 나이가 섞이는 상황이 수시로 연출됐다. 기자의 친구인 2명이 형·동생 사이인 경우도 있고, 기자가 형이라 부르는 사람이 친구의 친구인 경우도 적잖았다. 기자가 끼면 서열이 뒤죽박죽이 되고 말았다. ‘족보 파괴자’가 따로 없었다. 이제 기자와 같은 빠른 연생의 경험은 빠른 2002년생까지만 적용된다. 3월에 시작하는 학교 신학기에 맞추어 본래 나이보다 일찍 초등학교에 입학했던 빠른 연생 제도가 2009학년도부터 공식적으로 폐지됐기 때문이다.

최근 민주평화당 황주홍 의원은 ‘만 나이’ 계산을 권장하고, 공문서에 만 나이 기재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연령 계산 및 표시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황 의원은 “출생 연도부터 한 살이 되고, 해마다 한 살씩 늘어나는 전통적 나이 계산법인 ‘세는 나이’는 국제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계산법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며 “또한 빠른 연생이라는 ‘사회적 나이’까지 혼용되면서 불필요한 혼선과 사회적 비용 낭비, 서열문화에 따른 갈등 등 다양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고 법안 발의 취지를 설명했다. 빠른 연생으로 살아보니 나이로 인한 불편과 혼선 방지를 위해 연령 계산방식을 일원화해야 한다는 황 의원의 법안이 왜 진작 나오지 않았을까 싶다. 다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친구들보다 1년 늦게 늙는 건 참 행복한 일이다.

김선영 산업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