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어렵다고 아우성인데…왜 나라 곳간만 '풍년'일까 [심층기획]

여러분, 요즘 살림살이는 좀 나아지셨나요? 여기저기서 울상입니다. 가계도, 기업도 어렵다고 난리입니다. 경기 지표 곳곳에 빨간불이 켜졌고 경기 하강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습니다. 월세, 교육비, 물가 등은 다 오르는데 월급만 그대로라는 하소연이 여전합니다. 지난해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 시대를 열었다는데, 먼 나라 이야기만 같습니다.

유독 한 곳, 돈이 넘쳐나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정부입니다. 지난해 1월부터 11월까지 걷힌 국세가 당초 예측보다 11조8000억원이나 많았다고 합니다. 12월까지 추산하면 초과 세수가 25조원은 족히 넘을 게 분명합니다. 말 그대로 ‘나 홀로 호황’입니다.
25조원이면 얼마나 큰 돈일까요. 조 단위 액수라 현실감이 없을 정도입니다. 숫자로 풀어보면 ‘25’ 뒤에 ‘0’이 12개가 붙습니다. 우리나라 전체 국민 수를 5000만명으로 계산하면, 1인당 50만원씩 나눠 줄 수 있는 액수입니다. 그만큼의 돈이 ‘더’ 걷혔다는 말입니다.

세금이 더 걷혔다고 하니 선뜻 이해가 되지 않죠? 경기가 안 좋다는데 누가 냈을까. 탈세가 줄어든 것일까. 세무당국이 납세자를 쥐어짠 것일까. 속시원한 답변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세금은 더 걷혀도, 덜 걷혀도 문제입니다. “세금 예측만큼 어려운 게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래 계산보다 10% 가까이 차이 난다면 뭔가 문제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경기가 어렵다는데 세금만 더 걷힌 자체가 이상한 일입니다. 정부의 세수추계 방식, 세목별 세수 현황, 추가 세수의 쓰임 등 세금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25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초과세수 상황이 3년째 계속되고 있다. 최근 기재부가 발간한 ‘월간 재정동향 1월호’를 보면 지난해 1∼11월 국세수입이 279조9000억원에 달했다. 11월까지 걷힌 세금이 이미 연간 거둬들일 것으로 추산한 총액(268조1000억원)을 훌쩍 넘어선 셈이다. 세수가 몰리는 12월 국세 수입을 감안하면 초과세수 규모는 ‘25조원+α(알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초과세수 25조원은 역대 최고치다.

초과세수 규모는 매년 불어나고 있다. 2016년 19조7000억원, 2017년 23조1000억원의 세금이 예상보다 더 걷혔다. 물론 세금이 예상보다 덜 걷힌 적도 있다. 2013년 8조5000억원이, 2014년 11조원이 덜 걷혔다.

세수추계는 말 그대로 세금이 얼마나 들어올지 추정액을 계산하는 작업이다. 세수추계는 정부가 쓸 돈(예산)을 결정할 때 토대가 된다. 얼마가 들어올지 알아야 얼마를 쓸지 결정할 수 있다. 문제는 이 추계가 사실상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이라는 점이다. 정교한 추계 모형을 적용해도 실제 경제 상황에서 수많은 돌발 변수들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 많은 초과세수, 어디서 더 걷혔나

정부는 초과세수가 발생한 이유로 반도체 호황과 부동산 경기 영향을 꼽는다. 반도체 수출은 2016년 11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2년 동안 매월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했다. 반도체 호황으로 기업 이익이 늘면서 법인세 납부액도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2017년부터 지난해 초까지 이어진 부동산 활황도 세수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세목별로 살펴봐도 이 같은 상황이 뚜렷이 나타난다. 기업이 내는 법인세와 개인에 부과하는 소득세의 증가폭이 컸다. 지난해 1∼11월 법인세 수입은 69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보다 11조4000억원 늘었다. 목표 세수 대비 실제 걷힌 비율을 뜻하는 세수진도율은 110.1%에 달했다. 그만큼 기업의 벌이가 증가했다는 해석이다.
소득세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1월까지 소득세 수입은 79조원으로 1년 전보다 9조2000억원 늘었다. 11개월 만에 연간 목표액(72조9000억원)을 8.4%나 초과한 액수다.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양도세 수입이 급증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부가가치세 수입도 같은 기간 68조7000억원이 걷히면서 연간 목표치(67조3000억원)를 뛰어넘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2016년 이후 반도체 업황과 부동산 경기가 꺾일 것으로 내다봤는데, 호황이 이어지면서 세수 예측과 실제 세입에 차이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경기 어렵다는데… 나홀로 호황

경기 침체 상황에서도 세수만 호황을 보이는 가장 큰 이유는 ‘시차’ 때문이다. 국세 수입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법인세의 경우 전년도 기업 실적에 따라 세수가 크게 움직인다. 기업이 1년 전 발생한 수입에 대해 세금을 내는 지금의 구조에서는 적어도 1년 이상의 시차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2017년 반도체 호황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법인세가 크게 늘어난 효과”라고 말했다.

문제는 세수 호황으로 나라 곳간이 풍족해지는 게 긍정적이지만은 않다는 점이다. 25조원에 달하는 초과세수를 미리 파악했더라면, 재정운용을 더욱 확장적으로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돈을 풀어 경기 활성화에 나설 기회를 놓쳤다는 비판을 받을 만하다. 복지 강화 등 확장적 재정정책은 문재인정부의 정책 기조다.

오차 규모가 너무 크다 보니 세입결손을 우려한 기재부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세수추계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다. 2012년부터 4년 연속 세입결손이 발생한 걸 지나치게 의식했을 수도 있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 소장은 “정부는 확대재정을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실상 긴축재정을 한 셈”이라며 “재정건전성에 초점이 맞추다보니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투자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에도 호황 이어갈까

세수 호황이 올해에도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반도체와 부동산 경기가 꺾이면서 세입 감소에 대한 우려와 최저임금 인상 영향으로 인한 세수 증가 분석이 함께 나오고 있다.

정부는 올해 299조3000억원의 세입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국회예산정책처는 올해 국세 수입을 302조6000억원으로 전망했다. 정부 추계보다 3조3000억원 많은 규모로, 법인 실적 개선과 명목임금 상승에 따라 법인세와 소득세 수입이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세수가 부족할지, 초과할지는 오는 9월쯤 알 수 있다. 법인세 중간예납제도에 따라 올해 상반기 실적을 토대로 한 법인세가 오는 9월 납부되기 때문이다. 법인세 중간예납은 일시에 세금을 납부하는 데 따른 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법인세 일부를 중간에 미리 내는 제도다.
정부는 더 걷힌 돈으로 경기 부양과 함께 재정건전성 강화 등에 골고루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일부에서는 초과세수를 바탕으로 한 미니 부양책이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놓고 있다.

초과세수 일부는 국채 조기 상환에 쓰인다. 정부는 최근 세입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발행한 적자국채 4조원을 연내 조기 상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적자국채 발행 규모도 예정보다 줄이기로 했다. 올해 예정된 적자국채 발행 규모는 28조8000억원으로 지금까지 15조원이 발행됐다. 정부는 나머지 13조8000억원은 올해 세수를 고려해 발행하지 않기로 했다. 이로써 올해 말 국가채무는 당초 전망치(700조5000억원)보다 17조8000억원 줄어든 682조7000억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38.6%에서 37.7% 수준으로 0.9%포인트 낮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세종=안용성 기자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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