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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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냉골 도서관

독서당길. 서울 행당동∼옥수동∼한남동을 잇는 길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그곳을 문화의 거리로 만들면….” 그 거리에는 ‘조선의 문치’가 꿈틀거린다.

독서당이 그곳에 세워진 것은 500년이 넘는다. 성종 23년, 1492년 마포 빈 절터를 수리해 독서당으로 쓰다 중종 12년, 1517년 한강을 굽어보는 두모포(豆毛浦)에 독서당을 세웠다. 두모포는 독서당길 이름이 붙은 바로 그 지역이다. 이곳을 ‘동호(東湖) 독서당’이라고 했다. 마포 독서당은 ‘남호(南湖) 독서당’이다. 독서당의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세종 때에 이른다. 세종 8년, 1426년 사가독서제(賜暇讀書制)를 실시했다. 임금이 직접 휴가를 주어 책을 읽도록 하는 제도다. 당시 집현전 학자치고 사가독서를 하지 않은 이는 드물다.

조위는 ‘독서당기’에 세종 때의 독서당 풍경을 남겼다. “임금은 장의사에서 글을 읽게 하고, 음식과 단술을 보냈다. 때론 중사(中使)를 보내 하사물을 내렸다. … 긴 휴가를 주어 산사에서 편히 글을 읽게 했는데, 말년에는 신숙주 등 6명을 보내 마음껏 싫도록 학업에 힘쓰게 했다.”

장의사는 종로구에 있던 사찰이다. 중사는 왕명을 전하는 내시다. 그곳 선비들은 무엇을 했을까. 안광이 종이를 꿰뚫도록 밤낮 없이 공부를 했다. 세종 때의 찬란한 문화는 그로부터 만들어진다.

지금의 독서당은 어디일까. 대학 도서관이다. 하루 24시간 불이 꺼지는 법이 없다. 어떤 종류의 책을 읽든 그곳에서 쌓은 지식은 우리 사회의 자양분이 되고, 문명을 일으킨다.

서울대 도서관에 묘한 일이 터졌다.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혹한에 관악캠퍼스 도서관이 냉골로 변했다.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자면 담요·외투·장갑으로 무장해야 한다. 이유인즉 민노총 산하 서울대 기계·전기분회 소속 직원들이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기계실을 점거하고, 난방을 끊었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눈은 싸늘하다. “왜 애꿎은 학생을 볼모로 삼느냐.” 이런 생각을 했다. 음식을 보내고 책을 선물하지는 못할망정 난방을 끊고서야 어찌 나라의 인재가 길러지기를 바랄까. 이런 한심한 일도 없다.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