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열렸던 아시안컵에서 한국의 8강 탈락 직후 벌어졌던 친구들 간 술자리에서도 대표팀은 좋은 안줏거리가 됐다. 특히 한 친구가 침을 튀겨가며 감독과 선수 비판에 열을 올렸다. 아시안컵이니만큼 상대를 찍어누르며 당연히 우승을 차지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친구는 불과 6개월 전 러시아월드컵 때에도 독일전 승리 전까지 대표팀 비판에 열을 올렸었다. 대회 이전 강팀에 맞춰서 더 수비적으로 축구를 해야 한다고 했던 친구는 정작 대표팀이 수비적 전술로 스웨덴, 멕시코전에서 성과를 못 내자 투혼이 부족하다고 투덜거렸다. 돌이켜보면 꽤 일관성 없는 반응이었다. 아시안컵에서는 한 차원 높은 기술을 바탕으로 한 줄기찬 공격으로 완벽한 승리를 거둬야 하고, 월드컵에서는 탄탄한 수비와 역습, 그것도 모자라면 투혼으로라도 승리해야 한다는 얘기다. 불과 6개월 만에 대표팀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신하기를 요구했던 셈이다.
서필웅 문화체육부 기자 |
사실 이는 꽤 오래된 문화다. 국력이 일천했던 시절 한두명 영웅의 활약으로 강대국과 겨룰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분야가 스포츠였고, 그러다 보니 연금과 병역혜택 등까지 주며 선수들에게 ‘국위선양’을 요구했었다. 그리고 국위선양에 해당하는 ‘승리’를 가져오지 못하면 비판이 가해지곤 했다. 그 시절 스포츠계에서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폭력적 방식들이 횡행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국위선양을 위한 수많은 방법이 생긴 이 시대에도 이 문화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전히 ‘국민’들은 선수들에게 “승리해 나를 자랑스럽게 해다오”라고 요구하고, 그렇게 하지 못하면 비판과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다행스럽게도 구시대적 모습에서 벗어날 가능성은 충분하다. 국가대항전이 아닌 프로스포츠 등에서는 이미 국가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스포츠를 온전히 즐기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국가대표팀에 대한 지나친 자부심을 뜻하는 ‘국뽕’이라는 약간은 비하가 섞인 단어나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같은 약어가 온라인에서 쓰이기도 한다. 지금 우리가 즐기는 스포츠문화가 뭔가 잘못돼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는 뜻이다. 여기에 조금만 더 “승리하지 못해도 괜찮아”라고 얘기할 수 있게 되면 어떨까.
서필웅 문화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