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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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기피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던 밴드 멤버 ‘형사보상’

 

정신질환을 앓는다 속여 병역을 기피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밴드 멤버가 무죄 선고를 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6일 관보에 따르면 서울서부지법은 무죄 판결을 받은 A씨에 대해 최근 형사보상으로 비용보상금 316만원을 지급했다.

서울서부지법은 2017년 12월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문에 따르면 A씨는 2004년 1급 현역입영 대상자로 병역처분을 받자 자격·공무원시험 응시 등 사유로 입영기일을 연기했으나 당시 시험에 응시하지 않았다. 이후 질병 사유로 입영을 연기하다 2011년 10월 정신분열증(조현병)으로 병역처분변경원을 제출해 신체검사를 다시 받는 등 과정을 거쳐 2012년 5급 제2국민역 처분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그러나 A씨는 정신분열증을 앓았다고 밝힌 시기인 2008년 락밴드를 결성해 음반 3장을 제작했다. 2014년까지 클럽, 대학축제 등에서 연간 15∼30회 정도 공연을 했고 한 방송국의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A씨는 이렇게 밴드 활동을 하던 중인 2010년 10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서울 시내 한 병원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으며 의사에게 “2007년 이후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집에서만 지내는 일이 많았다”, “2010년 10월부터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쳐다보고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 집에서만 지냈다” 등 정신분열증세를 호소했고 편집성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았다.

법원은 이런 정황을 들어 “피고인이 병역의무를 기피할 목적으로 거짓으로 정신병적 증상을 호소하여 편집성 정신분열증 진단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면서도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증명됐다고 단정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가 자발적으로 정신과 치료를 시작한 게 아니라는 점, 당시 담당의사에게 자기 증세를 직접 설명한 적이 없다는 점 등이 법원의 무죄 판단에 힘을 보탰다. A씨가 공격적 행동을 보이자 A씨의 형이 모친과 친분이 있던 지인에게 부탁해 A씨를 병원에 보낸 것이었다. 또 진료 당시 동행한 지인이 대부분 증세를 의사에게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밖에도 2010년 진행한 심리평가보고서의 행동관찰란상에 기재된 ‘안 우울하다. 그냥 똑같다. 검사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삼촌이 가보라고 해서 왔다’ 등 A씨의 답변이 거짓으로 증세를 호소하는 태도로 보기 어렵다는 게 법원 판단이었다. 담당의사도 A씨에 대해 에너지, 활력, 의욕, 사회성 등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음성 증상이 심하고 진술했다. 또 같은 밴드 멤버도 “방송 프로그램 출연 뒤 매우 좌절감이 컸다”, “첫 정규앨범 발매 이후부터 A씨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고 이후 공연 시간을 제대로 맞추지 않아 집으로 찾아가 끌고 나오기도 했고, 공연 중간에 뛰쳐나가는 등 문제를 계속 일으켜 멤버 간 불화가 있었다”고 진술한 만큼, A씨가 음악 부문에서 성공하지 못해 큰 좌절감을 겪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법원은 “피고인이 병역 면제처분을 받은 후 별다른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 없는데도 상태가 호전된 건 매우 이례적이라, 피고인이 당시 해당 질환을 앓지 않았던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면서도 “병명을 정하는 건 의사지 환자가 아니고, 피고인이 음악활동으로 성공하지 못해 우울, 불만, 무기력감 등을 깊이 느끼면서 이상행동을 했던 건 분명해 보이므로, 이런 사정만으로 피고인이 증세를 꾸며냈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