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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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숨 쉴 권리도 빈익빈 부익부

“없이 살아도 숨은 쉬어야 할 텐데….”

지난 4일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국회의사당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크-하-’ 굉음과 함께 희뿌연 하늘로 시꺼먼 연기가 솟아올랐다. 초미세먼지(PM 2.5) 농도가 ‘매우 나쁨’을 훌쩍 넘은 날이었다. 마스크를 꾹꾹 눌러 최대한 틈새를 막으려 했지만 매연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현미 정치부 기자

버스는 수십분째 오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달려오는 택시를 붙잡았다.

“국회의사당 앞으로 가 주세요.”

미세먼지에 쫓기는 사람처럼 서둘러 문을 닫았다. ‘이제 마스크를 벗을 수 있으려나.’ 실내에 들어왔다는 안도감을 느끼려는 찰나에 기사가 운전석 창문을 열었다. 순간 야속함을 느꼈다. 택시 안에서도 계속 마스크를 썼다.

그런 모습과 종착지가 ‘국회 정문 앞’인 점이 기사의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넌지시 말을 걸었다.

“이런 날은 밖에 안 나오는 게 가장 좋죠. 가진 건 없어도 숨은 마음껏 쉬어야 할 텐데 이제는 그러지도 못하네요.”

착 가라앉은 음성과 고단함이 느껴지는 말투에 시선을 돌려 기사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3월 한낮의 태양이 택시를 달구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목덜미가 번들거렸다. 그 순간 최악의 미세먼지 사태를 맞아 각 매체에서 소개하는 대처법이 떠올랐다. ‘가급적 외출을 자제하라. 환기를 아예 안 하면 이산화탄소가 늘어 오히려 건강에 더 나쁘다. 10분 정도 환기를 한 뒤 공기청정기를 세게 가동하라’는 조언이었다. 이런 날 밖에 나오지 않을 수 있는 사람, 공기청정기가 풀가동되는 사무실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택시에는 공기청정기가 없었고 기사는 공기가 후끈해질 때마다 창문을 열었다. 차 유리 너머 보이는 회색 공기가 차량에 달려들었다. 그제야 택시가 지나가는 도시 곳곳의 인부가 눈에 띄었다. 이런 날에도 외부에서 일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사회에 재앙이 닥치면 가장 취약한 곳부터 엄습하는 세상 이치가 느껴졌다. 이제는 공기마저 공평하게 누릴 수 없는 세상이다.

국회를 출입하면서부터 ‘국회는 뭐하고 있나’라는 생각이 자주 든다. 여야는 그간 질질 끌던 ‘미세먼지 저감 및 관리에 관한 특별법’을 지난해 통과시켰지만 여전히 국회에 쌓여 있는 관련 법안은 많다. 자유한국당이 중국에 강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발목 잡고 더불어민주당이 미온적으로 대처하며 쟁점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기사의 말이 가슴을 쳤다.

“이러다가 (문제 해결은 못하고) ‘미세먼지 수당’을 준다고 하겠어요. 여당이든, 야당이든 뭐 주는 거 좋아하잖아요. 미세먼지 심한 날은 밥벌이하지 말고 취약계층은 집에 계세요∼ 라는 의미로.”

정말이지 여야가 ‘특단의 조치’로 미세먼지 수당을 주겠다고 경쟁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날은 오지 않았으면 한다. 오는 13일 미세먼지 관련 비쟁점 법안을 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에서 나아가 이제라도 모든 수단을 강구하는 초당적 협력을 해야 한다.

 

이현미 정치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