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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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근현대 학문사의 정신적 기반은 계몽에 있었다”

경진출판 ‘근현대 학문 형성과 계몽운동의 가치’ 시리즈 7권 완간…광범한 원문자료 번역·해설

양서 출판만을 고집해온 중견 출판사 경진출판(대표 양정섭)이 한국학중앙연구원과 손잡고 추진한 야심찬 프로젝트가 결실을 맺었다. 

 

한국학 총서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근현대 학문 형성과 계몽운동의 가치’ 시리즈 전 7권을 모두 펴낸 것. 연구진들은 근현대 학문사를 포괄할 수 있는 지식 기반 데이터 구축과 근현대 분과 학문의 발전 과정을 기술하겠다는 거시적인 목표를 세우고 출발하였다. 그 과정에서 근현대 한국 학문사의 주요 정신적 기반이 계몽에 있었음을 주목하였다. 

 

3년간의 연구·집필 과정에서 수많은 자료와 씨름한 연구진은 출발 당시 1880년대의 자료를 기점으로 1945년까지 각종 신문과 잡지, 교과서류의 단행본 등을 수집하고, 이를 주제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그 가운데 근대 계몽기 잡지의 경우 ‘학문 분야별 자료’를 분류하여 이미 9종의 자료집을 발간하기도 했다. 자료집은 학회보(잡지)에 수록된 논설·논문 등을 학문 분야별로 나누어 8종으로 출판하고, 권9는 분류 기준과 결과를 별도로 편집하였다. 연구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월례발표회를 가졌으며, 연구진 각자 개별 논문을 쓰기도 하였다. 그러면서도 근현대 학문 형성과 발전, 계몽운동의 전개 과정 등과 관련된 자료가 수없이 많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연구진과 출판사는 집필 과정에서 통일성을 기하기 위해 집필 원고에 대하여 각 연구원의 동의를 얻어 연구 책임자가 일부 가감하기도 하였다. 

제1권, ‘한국 근현대 지식 유통 과정과 학문 형성 발전’. 학문 역사에서 근대는 과학사상을 기반으로 한다. 이 과학사상은 수기치인을 목표로 하는 전통적인 학문 이념과는 달리 지식 탐구를 목표로 하는 학자의 개념이 등장하였다. 이 시기 학자는 신사와 마찬가지로 일반인과 대립하는 개념이었으며, 그들에게 부여된 천직은 일반인을 교화하는 역할, 즉 계몽성을 띠고 있었다. 근대 학문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지식과 학문에 대한 새로운 개념이 형성되어 갔다. 특히 지식이라는 용어는 단순한 앎 대신 학문, 문견과 합쳐져 이치를 궁구하고 격치하는 행위의 결과를 의미하는 용어로 변화해 갔다. 이 지식 개념의 성립과 확장에서 근대식 학제의 도입과 교육학의 영향 관계를 주목할 수 있는데, 교육에서 지육(智育)을 위한 지식 개념의 정립은 학과 개념의 도입과 함께 근대 학문을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되었다.

 

근대에 이르러 문명개화와 국가 진보를 위해 지식과 문견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강화되면서 유학생을 중심으로 다양한 분과 학문 지식이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서유견문’이나 ‘친목회회보’는 이러한 시대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지만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등장한다. 이러한 지식 확장은 국내의 신문과 학회보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제2권, ‘한국 근대 계몽운동의 사상적 기반’. 철학이라는 전문 분야에서 사용하는 계몽철학, 또는 계몽주의, 계몽사조 등과는 달리 일상어로서의 계몽이 갖는 의미는 매우 추상적이고, 그 지칭하는 범위도 넓다. 더욱이 역사학이나 교육학 분야에서 다루는 계몽의 의미를 고려한다면, 가르치는 모든 행위가 다 계몽의 범주에 속할 수 있다. 계몽이라는 용어는 1880년대 한문 신문이었던 ‘한성순보’에 등장하기 시작하며, 1900년대에 이르러 일상어로 널리 쓰이기 시작하였다. 물론 조선시대에도 ‘계몽편(啓蒙編)’이라는 아동용 교과서가 있었지만, 일상에서 계몽이라는 용어가 번지기 시작한 것은 이 시기이다.

 

제3권, ‘계몽의 주체로서 근대 지식인과 유학생’ 편에서는 계몽 운동의 주체가 누구이며,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를 묻는다. 근대 지식 형성 과정에서 국가에 대한 인식, 인민 또는 국민에 대한 자각이 이루어진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 과정에서 당시 지식인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규명하는 문제는 계몽 운동의 주체가 누구인지,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문제가 된다. 3권은 이 문제를 깊이 있게 천착했다.

 

제4권, ‘학문 사상과 근현대 계몽운동의 지향점’. 우리나라 근대 계몽기 학술 담론은 1880년대 이후 1910년 애국계몽시대에 이르기까지 급격한 변화를 보여왔다. 개항 직후 출현한 문명·진보론은 애국계몽시대 충군애국론으로 변화해 갔으며, 국민·민족·국가 개념이 확립되면서 충군의 개념보다 애국이 강조되는 방향을 전개되었다. 그 과정에서 국리민복의 학술사상이 형성되었고, 지식 체계로서 학문사상, 곧 과학주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에서 문명·진보론, 사회구조론과 생존경쟁론, 충군애국론, 국가주의, 민족주의 등의 근대사상이 형성되었으며, 시대 환경에 따라 이러한 이데올로기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일제 강점기의 국권 상실은 문명과 진화, 국가 개념, 민족의 의미 등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유발하는 요인이 되었는데, 제국주의의 침탈 속에 학술사상의 위축, 계몽의 주체와 운동 방식에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제5권, ‘계몽의 이데올로기와 대상’. 근대 계몽기의 계몽담론이 문자 보급을 포함하여 추상화된 근대 지식 보급에 있었다면, 일제 강점기의 계몽은 문자 보급을 우선시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마치 계몽은 문맹퇴치를 의미하는 것처럼 해석되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식인, 주체, 객체, 수단(방법)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가에 있다. 달리 말해 계몽의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고 확산하는 지식인들의 의식은 어떠한가, 그들이 곧 계몽의 주체인가, 계몽의 주체를 별도로 설정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 계몽의 객체는 왜 등장하는가, 그리고 무엇을 일깨워야 할 것인가 등의 문제를 이 책에서는 해명하고 있다.

 

제6권, ‘일제 강점기 계몽운동의 실제’. 일제 강점기의 계몽운동은 지식 보급뿐만 아니라 다양한 민중운동을 포함한다. 애국 계몽기의 민족운동으로부터 교육운동, 학생운동, 종교운동, 노동운동, 농민운동, 여성운동, 국학운동 등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운동은 모두 계몽성을 띤 운동들이었다.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된 계몽운동을 총정리했다.

 

제7권, ‘계몽의 수단: 민족어와 국어’. 근대 의식의 성장 과정에서 출현한 국문사상은 국문의 필요성과 가치를 인식하고 국문을 바르게 사용해야 한다는 논리를 주축으로 하고 있다. 근대 계몽기의 국문론은 현실 언어와 일치하는 국문 통일,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는 국문자 사용, 지식 보급과 문명 발전을 위한 국문 사용의 필요성 등을 주제로 삼고 있다. 민족어로서의 국어, 국문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망라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