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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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수사권 조정 누굴 위한 건가

검경수사권 조정 정부안이 발표되던 지난해 6월쯤 일이다. 경찰 측 인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는 경찰이 수사권을 가져야 할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핵심은 ‘개혁’ ‘용기’ ‘타이밍’ 그리고 ‘결단’이었다. 개혁을 위해서는 지금이 적기라는 주장이다.

 

현재 수사권 조정의 전제조건으로 맞물려 논의되고 있는 것은 지금의 국가경찰을 지역별로 나눠 지방자치단체장에게 감독 권한 등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자치경찰제다. 구성원이 13만명에 달하는 ‘거대 조직’을 분산시켜야 ‘문민 통제’가 가능하다는 취지에서다. 이 같은 시대적 흐름에 맞춰 현 정부 들어 검찰의 힘을 빼는 방향으로 수사권 조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배민영 사회부 기자

당장 자치경찰제로 인한 경찰의 고민도 적지 않다. 한 경찰관은 “현행 ‘국가경찰’이 ‘자치경찰화’하면 안 그래도 열악한 근무환경이 더 나빠지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직원이 많다”고 했다. 그는 “소방공무원들이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는 판에 우리는 반대로 가고 있다”면서 “재정 지원이 안 돼 자기 돈 들여 장비 사는 소방관들처럼 우리도 그렇게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경찰이 수사권을 쥐는 걸 가장 염려하는 것은 역시 검찰이다. 일각에서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권력의 시녀’라는 비아냥을 듣던 검찰이 수사권 조정 논의에 불만을 표출할 자격이 있느냐는 말도 나온다.

 

하지만 검찰이 경찰에 권한을 나눠 주는 인색할 수밖에 없는 배경에는 아픈 과거가 있다. ‘검찰공화국’이라고 불리던 우리나라도 과거엔 ‘경찰공화국’인 시절이 있었다. 1948년 광주지검 순천지청에 근무하던 박찬길 검사가 죄 없는 민간인을 살해한 경찰관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가 빨갱이로 몰려 경찰에 총살당한 일도 있다. 보다 못한 국회가 수사권과 기소권, 수사지휘권 등을 검찰로 넘겼다.

 

성고문과 고문치사 등 과거 경찰은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인권 유린 행위를 저질렀다. 최근에는 강남 클럽 ‘버닝썬’ 유착 의혹까지 불거졌다. 검찰 역시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박근혜정부 시절 김기춘·우병우의 권한남용 문제에다 최근 검찰 과거사위원회가 “검찰총장은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 피해자 유우성씨에게 사과하라”고 권고했을 정도다. 이런 마당에 수사권을 누구에게 빼앗아 누구에게 주자는 논의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에서 진행 중이다. 지금까지 거론되고 있는 다양한 방안에 대해 검찰이나 경찰 모두 내심 불만이다.

 

수사권 조정은 시대적 과제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새로 권한을 나누고 받는 과정에서 그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대비책 마련도 시급하다. 수사권 조정이 자칫 시행착오로 이어질 경우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간다. 수사권 조정이 누구에게 유리한지를 사사건건 따지고 들면 바로 검찰과 경찰이 ‘밥그릇 싸움’을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새로운 형사사법 체계를 마련하려는 궁극적 목적은 국민의 편안한 삶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이를 해결해야 할 책무 역시 검찰과 경찰에 있다.

 

배민영 사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