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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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보다 하루 더 사는 게 소원인 나라, 바뀌어야” [차 한잔 나누며]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전국대표 인터뷰

“발달장애인의 부모들은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사는 게 소원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챙겨줘야 하지만 국가나 사회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우니까요.”

 

지난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종로장애인복지관 1층 카페에서 만난 윤종술(55)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전국대표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를 이 같이 설명했다. 이날 연대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정부에 ‘진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 도입을 촉구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경복궁역을 거쳐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까지 행진했다. 이들을 이끈 사람이 윤 대표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전국대표가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종로장애인복지관 1층 카페에서 세계일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정부·정치권이 발달장애 종합대책에 대한 예산 확보에 힘 써야 한다" 고 말하고 있다. 하상윤기자

집회와 행진을 막 마치고 온 터라 아직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듯 말이 조금 빨랐지만, 윤 대표는 시종일관 진지한 표정으로 인터뷰에 임했다. 그는 “오늘 집회를 열게 된 건 정부가 지난해 9월 발표한 ‘발달장애 생애주기별 종합대책’에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서비스를 도입하면서 기존 서비스를 내놓으라고 하는 건 장애인 가족들에 대한 기만”이라고 지적했다.

 

발달장애인들의 낮 활동을 지원한다는 취지에서 올해부터 도입된 주간활동서비스를 받으려면 기존의 활동지원서비스를 포기해야 해 사실상 새 서비스라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윤 대표는 “전체 성인 발달장애인의 약 1.5%인 2500여명만 주간활동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며 “서비스 시간 역시 하루 4시간, 한 달 평균 88시간 남짓에 불과해 실효성이 없다”고 꼬집었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표./2019.03.21./하상윤 기자

윤 대표는 “하루 4시간만 아이를 돌봐주면 가족이 나머지 20시간을 책임져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부모가 직장을 다니지 못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결국 예산이 부족해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며 “장애인 가족들이 많은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정부가 발표한 대책을 단계적으로 시행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해달라는 것 뿐”이라고 덧붙였다.

 

문재인정부의 공약 중 하나인 ‘치매 국가책임제’와 관련해서도 윤 대표는 정부에 섭섭함을 드러냈다. 그는 “발달장애는 태어날 때부터 생기는 것이고 치매는 주로 노인들이 겪는 질병인데, 성인 발달장애인의 가족은 치매 노인의 가족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우리는 국가가 복지서비스를 좀 더 보편적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표./2019.03.21./하상윤 기자

윤 대표 역시 발달장애의 일종인 자폐성장애 2급 아들을 둔 아버지다. 원래 사업을 하던 그는 아들을 받아주는 어린이집이 한 곳도 없는 현실에 답답함을 느껴 장애인 운동에 뛰어들었다. 처음에 경남 김해시에서 단체를 만들어 활동하던 윤 대표는 더디지만 조금씩 상황이 나아지는 것을 보고 전국 단위 조직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장애인부모연대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현재 연대의 회원 수는 11만여명이다. 전체 발달장애인이 약 23만명인 점을 감안하면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고 느낄 법도 하다. 그래도 윤 대표는 “예전과 비교할 때 분명 제도적인 부분이나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나아졌다”며 “장애인 부모들이 미래를 불안해하지 않고 ‘아이에게 더 나은 제도를 물려주겠다’는 생각으로 함께 행동했으면 좋겠다”고 털어놨다.

 

윤종술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표./2019.03.21./하상윤 기자

정부가 지난해 종합대책을 내놓은 것도 연대의 지난한 투쟁의 성과물이다. 윤 대표는 “광화문광장과 청와대 앞에서 수 차례 집회를 열고 연대 회원들이 삭발과 단식에 나선 결과 정부가 대책을 발표한 것”이라며 “이제 남은 건 대책이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관련 부처들이 세부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정부와 정치권에서 예산 확보에 힘쓰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연대는 이날부터 종로장애인복지관 앞에서 24시간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윤 대표는 “언제 끝날 진 모르겠지만 농성이 적어도 몇 달 간은 이어질 것”이라며 “정부 관련 부처들에 정책 제안도 하고, 협의에도 나설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발달장애인의 복지·교육·노동·문화·주거 문제를 국가가 제대로 책임지는 것이 진정한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라고 강조했다.

 

김주영 기자 bueno@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