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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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꽃길은 옛말 "자격증 따러 갑니다” [S스토리]

송무시장 벽 높아… 특화돼야 생존 금융·부동산 전문영역 구축 나서/ 로스쿨 도입 후 인력 넘쳐… 변호일하며 ‘스펙’ 쌓기 분투

#2014년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손모(33) 변호사는 그해 서울 소재 대형 법학전문대학원에서 조세법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당시 회계법인에 근무했던 손 변호사는 퇴근 후와 토요일을 활용해 매주 약 9시간씩 2년간 수업을 들었다. 현재도 업무와 논문 준비를 병행하고 있다. 그는 5일 “일이 많을 때는 노트북을 가져가 수업 후 강의실에서 밀린 업무를 처리한다”고 말했다.

 

#2015년 김모(36) 변호사는 증권·펀드 투자권유대행인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는 업무 지장을 피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위주로 공부했다. 김 변호사는 금융회사 사내변호사에 입사한 뒤 펀드·증권·파생상품 투자자문인력 자격증 3개를 추가로 취득했다. 김 변호사는 “학부 전공이 금융 쪽이 아닌데 금융회사 사내변호사로 지원하며 이 분야에 관심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전했다.

 

공부하는 젊은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 변호사 자격을 얻은 뒤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거나 금융·공인중개사 등 자격증을 취득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일리노이주 변호사 자격 시험에 뛰어드는 젊은 변호사들도 증가하고 있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설립 이후 매년 1500여명의 신규변호사들이 시장에 쏟아져나오면서 과거처럼 변호사 자격증만 있어도 먹고살 수 있다는 말은 옛말이 됐다. 2019년 신(新) 변호사시대 모습이다.

 

◆쏟아지는 신규변호사… 전문분야 특화해야 생존 가능

 

대한변호사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변호사 숫자는 2만5838명이다. 2009년(9612명)과 비교해 3배가량 껑충 뛰었다.

 

월평균 소득 200만원 미만의 변호사도 늘고 있다. 매년 1500여명씩 젊은 변호사들이 배출된다. 법률 서비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이 증가하다 보니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월평균 소득 200만원 미만 변호사(개인사업자 기준)는 889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기존 송무시장은 변호사 시장에 이미 자리 잡은 중장년 변호사들과 ‘전관’(前官·판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장악했다. 본지와 심층 인터뷰를 진행한 변호사 외 다른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전문박사과정을 밟은 30대 변호사 5명은 모두 포화된 변호사시장에서 자신들의 전문영역을 구축하기 위해 늦은 공부에 매진했다.

 

2016년부터 서울대학교에서 상법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모(34) 변호사는 “요즘은 인터넷만 뒤져도 법률 관련 지식이 나와 회사에서 변호사들에게 요구하는 전문지식 수준이 높아졌다”며 “높은 전문성을 익히려면 박사과정을 통해 새로운 법리와 해외 제도 등을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2013년 가정폭력 피해·성폭력 상담사 자격증을 각각 취득한 장모(38·여) 변호사도 “여성 변호사로서 향후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자들을 지원하는 업무가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법률적 지식은 기본이고 상담 노하우 등을 배우면 업무수행에 큰 도움이 된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공인중개사 자격증 취득을 준비하는 김모(38) 변호사는 “부동산 분야에서 큰 빌딩은 매매가격이 약 수십억원이나 된다”며 “법률적 분석과 함께 공인중개사로서 권리분석을 하면 의뢰인에 더 신뢰를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로스쿨 박사과정도 인기… 조세법·지적 재산권법 등으로 몰려

 

변호사들은 로스쿨 전문박사과정(S.J.D·Doctor of Juridical Science)에 많이 몰리고 있다. 일반대학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변호사 업무에 활용되는 전문교육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일반대학원에 비해 수료에 필요한 기간도 짧고 야간수업도 비교적 자주 열린다.

 

이날 본지가 입학정원 100명 이상인 서울 소재 대형 로스쿨 전문박사과정 입학생 숫자를 확인한 결과 그 숫자는 점차 증가하고 있었다. 지난해 서울·연세·고려·성균관·이화여대(한양대는 비공개) 로스쿨 전문박사과정 입학생은 77명으로 2016년 67명에 비해 늘었다. 현재 이들 로스쿨에서만 200여명의 학생들이 전문박사과정을 밟고 있었다. 이들 대부분은 젊은 변호사들로 알려졌다.

 

손모(33) 변호사는 “한 수업에 15명가량이 있다고 하면 3분의 2 정도는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젊은 변호사”라며 “나머지는 학술 목적으로 박사과정을 밟거나 연령대가 높은 세무·회계법인의 임원들이다”고 말했다. 상법 박사 과정을 밟는 김모(34) 변호사도 “60명이 수업을 듣는다고 하면 40명은 젊은 변호사들이다”고 했다. 지난해 한 서울 소재 대형 로스쿨의 전문박사과정의 경우 2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박사과정을 밟는 젊은 변호사들은 주로 조세법과 지적 재산권, 상법에 몰린다. 서울 소재 대학의 로스쿨 교수는 “교수들에게 지도학생이 1∼2명 생겼을 정도로 박사과정을 밟는 변호사들이 늘고 있다”며 “이들은 다른 박사과정 학생들에 비해 주제의식도 매우 구체적인데 주로 지적재산권, 조세, 특허법을 공부한다”고 말했다. 고동원 성균관대 로스쿨 교수도 “교수들 사이에서도 박사과정을 밟는 변호사들이 많아졌다는 말이 나온다”며 “변호사 시장의 경쟁이 심화돼 변호사들도 전문성을 갖춰야 살아남을 시대가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국 변호사도 인기… 변협 차원 지원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영어에 능통한 젊은 변호사들을 중심으로는 미국 변호사 자격 취득도 인기다. 이들은 한국 교민 숫자와 진출한 국내 기업이 많은 미국 캘리포니아와 일리노이, 뉴욕 주(州) 시험에 많이 응시한다. 공인중개사 시험과 함께 미국 변호사 자격증을 준비했던 김모(38) 변호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이후 변호사 자격을 가진 국내 변호사들에 대한 해외 법률사무소들의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미국 변호사 시험 대비 강의를 진행하는 서울 강남구 소재 K 아카데미의 경우 현재 변호사 100명이 등록해 시험을 준비 중이다. 학원에 따르면 이들 중 개업변호사와 법무법인 소속 변호사가 각 40%를 차지하고, 20%는 사내변호사다. 20대 중반에서 40대 초반이 대부분이다. 수업이 개강하는 1월과 8월의 경우 각 20∼30명의 변호사들이 상담을 받는다. 뉴욕주 변호사인 김기태 K 아카데미 대표는 “2012년 학원 문을 연 뒤 매년 수강생이 늘고 있다”며 “변호사들은 국내에서 해외 기업의 지적재산권 업무 등을 할 때 미국 변호사 자격을 활용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활동하는 한 커뮤니티에도 미국 변호사 시험을 함께 준비할 변호사를 모집한다는 글이 종종 올라온다.

 

대한변협도 지난해 7월 변호사들의 미국 변호사 자격 취득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지난해 6월에는 워싱턴 DC 주 변호사 시험 응시자격 완화 등에 대한 입장을 미국변호사협회 측에 전달하기 위해 소속 회원들로부터 의견을 수렴했다. 이외에도 변협은 젊은 변호사들의 전문분야 수요가 높은 지적재산권 관련 교육을 지난 2월부터 시작해 올해 총 34차례 교육을 진행할 계획이다.

 

다만 젊은 변호사들 사이에서는 변협의 지원이 더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모(36) 변호사는 “변호사들은 협회 차원의 의무 연수를 받아야 하는데 공신력 있는 자격증을 딸 경우 이를 의무 연수 시간으로 인정해주면 전문성 함양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손모(33) 변호사도 “협회에서 전문변호사 제도를 운용하고 있는데 자격이 주로 소송 건수”라며 “자격증 취득이나 특정 분야에 대한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으면 전문변호사 자격을 인정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생존 궁여지책”… 굴욕적 접견·집사 변호사도 늘어

 

“접견 변호 때 피해를 경험했을 경우 협회에 알려주세요.”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달 26일 회원 변호사들에게 ‘접견 변호’ 주의보를 내렸다. 구치소 수감자들끼리 신규 여성 변호사들의 연락처를 공유해 순차적인 접견을 요청하는 등 피해 사례들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2019년 신 변호사시대를 맞아 ‘접견 변호사’, ‘공유 사무실’ 등 젊은 변호사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화가 업계에 등장했다. 약 10년 전만 해도 보기 드물었던 광경이다.

 

우선 ‘접견 변호사’란 문화가 나타났다. 접견 변호사란 구치소 수감자 등을 대상으로 접견만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다. 이날 변협이 회원들에게 공지한 피해 사례는 △선임을 빌미로 구치소 접견을 요청한 뒤 상담만으로 종결된 경우 △수감자끼리 신규 여성변호사 연락처를 공유해 자신들과 순차 접견을 요청하는 경우 △구치소 내 다른 수감자를 함께 접견해 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다.

 

‘집사 변호사’도 등장했다. 구치소 등에 수감된 유력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의 심부름을 해주는 변호사다. 수감자들의 경우 일반인 접견은 횟수 등이 제한됐지만 변호인 접견은 비교적 자유롭게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을 이용한 것이다.

 

피의자 방어권 보장이 아닌 수감자의 말동무만 목적으로 하는 접견·집사 변호사가 늘면서 업계는 심각하게 상황을 보고 있다. 이에 변협은 특정 변호사가 △한 달에 세 명 이상의 수용자 접견 △한 수용자를 한 달에 12회 이상 접견 △이 같은 접견을 두 달 이상 지속을 모두 충족할 때 ‘과다접견변호사’로 지정해 징계하고 있다.

 

변협에 따르면 2017년 구치소 접견 관련으로 징계를 받은 변호사 숫자는 12명이다. 2016년 2명에 비해 6배 늘었다. 2013∼2015년에는 한 명도 없었다.

 

장윤미 변호사는 “젊은 변호사들이 시장 활로를 찾기 위해 모욕적임에도 무리한 접견 변호를 하는 경우가 있다”며 “접견 전문 변호사를 하나의 사업모델로 운영하는 법무법인도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별산제 법무법인도 등장했다. 별산제 법무법인이란 별개 법률사무소를 묶어 하나의 법무법인 형태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건은 따로 수임하되 사무실 임차료와 임금 등은 공동 경비로 부담한다. 개인 변호사 개업이 부담스러운 젊은 변호사들의 높은 호응을 받고 있다.

 

최근에는 ‘반(半)별산제 법무법인’도 나타났다. 기본적으로 별산제 구조를 띠지만 특정사건의 경우 업무를 공유하고 해당 수익을 나눈다.

 

소호(SOHO·소규모 사무실) 등 공유 사무실에 입주하는 젊은 변호사들도 늘고 있다. 법률서비스 시장의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창업을 위해 많은 자금을 투입하기보다는 기존 공유 사무실에 책상만 빌리는 방식이다. 서울 삼성동 등 이른바 변호사들이 몰리는 자리에도 1인당 임대료가 100만원도 안 될 정도로 저렴하다.

 

김남국 변호사는 “과거에는 변호사들이 좋은 사무실 등 외형을 갖추려고 노력했다면 젊은 변호사들은 임대료 등 고정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유 사무실에 들어가 사건을 수임하고 일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