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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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아니야?" 직접 눈으로 본 동부구치소 [르포]

철창으로 막힌 창문과 높이 솟은 감시탑, 철조망으로 도배된 담벼락. 교정시설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이렇다면 서울동부구치소를 알아보기 어려울 수 있다.

 

지난 3일 서울 동부구치소에 가기 위해 서울 송파구 문정동을 찾았는데 주변엔 온통 신식건물만 가득했을 뿐 상상했던 구치소 건물은 보이지 않았다. 보안시설인 탓에 네이버 지도에서 검색조차 되지 않는 동부구치소를 찾아 빌딩 숲을 헤맸다. 서울동부지법과 동부지검이 있는 법조타운을 둘러보다 마침내 ‘서울동부구치소’란 간판이 달린 건물을 발견했다.

 

성벽이 도심을 감싸듯 건물이 또 다른 건물을 둘러싼 형태의 동부구치소는 3만3057㎡ 면적에 5개동 12층 건물로 근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주변의 신식건물 사이에서 이질감이 없어 제대로 찾아온 게 맞나 싶을 정도였다.

 

건물 내부로 들어섰다. 깨끗하고 쾌적했다. 서울동부구치소는 2017년 6월26일 문을 열었다. 같은해 4월 개장한 롯데월드타워보다 새 건물인 셈이다.

 

구치소 직원이 중앙통제센터로 안내했다. 구치소 전체에 설치된 810개의 CCTV가 한눈에 들어왔다. 수감자 복도와 일부 수감자의 방 등을 비추고 있다. 특이한 움직임이 감지되면 CCTV는 이를 인지하고 경보를 울린다.

 

원격진료센터도 마련돼 있다. 몸이 불편한 환자들은 영상을 통해 의사를 만나 진료를 받는다. 수감자들이 외부로 나가거나 의사가 직접 구치소를 방문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던 것이다. 원격의료진료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모두 6562명이 혜택을 봤다. 지하에는 동부지검과 동부법원을 연결해주는 통로가 있다. 수감자들은 외부 노출 없이 걸어서 이동하면 된다. 

 

수감시설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듣고 수감자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사무동과 수용시설을 잇는 연결통로를 지나기 위해서는 두 개의 철문을 통과해야 한다. 요란한 쇠 마찰음 소리와 함께 창살로 된 사무동 쪽 철문이 열렸다. ‘쿵’ 소리와 함께 한쪽 문이 닫한 뒤 반대쪽 문이 개방됐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기 위해 모든 수감시설의 문은 동시에 열리지 않는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수감동 복도에는 벽화가 가지런히 진열돼 있었다. 벽화 옆 엘리베이터 버튼에 교도관의 지문을 찍자 승강기가 내려왔다. 가장 높은 곳인 12층으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세그웨이(전동수단) 를 탄 교도관이 미끄러지듯 다가와 기자를 맞이했다. 빠르고 효과적인 감시를 위해 도입된 장비다. 동부구치소의 바닥이 매끄러운 형태여서 이 장치를 쓰기 편하다. 야간 순찰용 로봇 도입도 추진했지만 부정적인 여론에 예산확보가 어려워지면서 계획이 중단됐다고 한다. 

 

학교 교실처럼 나란히 정렬된 방 앞에는 번호표가 붙어 있었다. 수감자들이 갇힌 곳이다. 각자의 일과 때문에 방은 비어 있었다. 철창 사이로 빨래와 이불 등이 보였다. 벽에는 TV가 눈에 띄었다. 법무부 관계자는 “교양프로그램 위주로 편집해 보여주는 ‘보라미 방송’ 시청을 위한 것”이라며 “대부분 녹화방송이지만 국민적 관심이 쏠린 국가행사나 스포츠 경기 등은 수용자들의 사회적응을 위해 가끔 생방송으로 보여준다”고 말했다.

 

교도관이 방문을 열며 “직접 들어가서 둘러보라”고 안내했다. 다른 사람 방에 허락도 없이 들어가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갑자기 문이 잠길까 하는 불안한 느낌도 받았다. 교도관이 먼저 신발을 벗고 들어가고 나서야 용기가 났다.

 

책상 위에는 당구 교본이, 그 옆에는 컵라면과 커피가 쌓여있었다. 구치소 관계자는 “하루에 세 번 보급되는 뜨거운 물로 라면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면 된다”며 “모든 교정시설에서 썬크림이나 로션 같은 미용용품과 과자 등 간식도 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인기 있는 상품은 볶음 고추장인 것 같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창문 앞쪽에는 변기가 있었다. 용변 보는 수감자를 가려주기 위한 아일랜드 식탁 같은 벽도 설치돼 있었다. 층마다 농구 골대가 설치된 운동시설도 마련돼 있다. 한 교도관은 “술, 담배는 못하고 규칙적인 생활만 한다”며 “오히려 몸이 건강해져서 나가는 경우도 많다”고 귀띔했다. 

 

동부구치소 정원은 2060명이다. 현재 2276명이 구치소에서 머물고 있다. 수용률은 110% 수준이다. 독거실은 432개, 3명, 5명이 생활하는 혼거실은 376개다. 5인실은 최대 8명까지 수용이 가능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생활하다 보석으로 풀려났다. 최순실씨 등 국정농단사태에 휘말렸던 지난 인사들도 이곳에 있거나 이곳을 거쳐갔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 같은 흉악범도 수용된 상태다.

 

여론은 범죄자들을 위한 교정시설이 호화롭다고 지적한다. 피해자의 인권을 짓밟은 사람들이 인권을 보호받으며 생활하기 때문이다. 기자가 군 생활을 했던 내무실이나 옛 자취방이 떠올랐다. 50명이 한 내무실을 쓸 정도로 열악한 군 시설과 햇볕조차 잘 들어오지 않던 자취방은 호텔급 교정시설과 비교됐다. 선크림을 바르고 커피를 마시는 수감자들이 교도관과 싸우다 소송을 제기하는 모습을 피해자들이 본다면 어떤 기분을 느낄지 상상하기도 어려웠다. 

 

하지만 교도관들의 생각은 달랐다. 교정시설이 역할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충분히 지원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교도관은 “교정시설은 말 그대로 수용자를 교육해 사회적응 능력을 키우는 곳”이라며 “수감자들이 죄를 짓지 않겠다는 계기를 마련해 주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교정시설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필재 기자 rus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