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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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신라 화랑의 공부

울진 왕피천변의 성류굴. 성스러움(聖)이 머무르는(留) 굴이다. 신선(仙)이 노니는(遊) 굴이라고도 한다. 내부에는 12개의 크고 작은 광장과 50만여개의 종유석이 있다. 석회수가 만들어내는 동굴진주도 있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을까. 그곳에서는 선승과 화랑이 마음을 닦았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 출가해 승려가 된 그도 그곳에 갔다. 문화재청의 조사 결과 성류굴에서 화랑이 수양한 사실이 확인됐다.

‘삼국사기’ 신라 진흥왕 37년, 576년의 기록, “아름다운 남자를 뽑아 화랑으로 받드니, 무리가 구름처럼 모여 서로 도의를 닦고 가락을 즐겼다. 멀리 명산대천을 가보지 않은 곳이 없다.” 김대문의 ‘화랑세기’의 글, “현좌충신이 이로부터 나오고, 양장과 용졸이 이로부터 말미암았다.”

삼국사기는 최치원의 ‘난랑비서’를 인용해 화랑의 기원을 전한다. “우리나라에는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고 한다. 그 가르침의 기원은 ‘선사(仙史)’에 자세히 실렸으니 삼교(불·선·유)를 포괄하고 중생을 교화하는 것이다.” 풍류는 놀고 즐기는 세속적인 의미가 아니다. 선은 중국식 신선과는 다르다. 단재 신채호는 그것을 우리의 고유 사상이라고 했다.

성류굴 벽에 새겨진 이름 공랑(共郞)과 임랑(林郞). ‘랑’으로 칭한 그들은 화랑이다. 가까이에 새겨진 승려 범렴(梵廉)의 금석문, ‘정원 14년 무인 8월25일 범렴이 다녀갔다.(貞元十四年 戊寅八月卄五日 梵廉行)” 이때는 원성왕 14년, 798년. 원성왕은 독서삼품과를 만들고, 김제 벽골제를 증축한 왕이다.

공랑과 임랑은 무슨 공부를 했을까. 세속오계를 가슴에 새기며 마음을 닦지 않았을까. 그렇지 않다면 캄캄한 굴에 갔을 리 없다. 지금의 교육은? 입시에 찌들고, 이념투쟁 교육에 찌들어 가고 있다. 20대 남성의 국정지지율 하락을 두고 설훈 의원이 한 말, “그때(이명박·박근혜정부) 제대로 된 교육이 됐을까.” 앞으로는 어떤 교육을 하겠다는 것일까.

마음을 닦을 기회를 박탈당한 아이들. 그런 아이들을 안쓰럽게 생각하기나 하는 걸까. 성류굴에 간 공랑과 임랑. 잘못된 오늘날의 세태를 일깨운다.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