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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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에는 워싱턴 와인을 마셔라

영화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엘리엇만을 끼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 시애틀. 미국 북서부 워싱턴주 최대의 도시인 이 곳은 1993년에 나온 로맨틱 코미디 영화 ‘시애틀의 잠못 이루는 밤(Sleepless in Seattle)’으로 우리들에게 더 익숙한 곳입니다. 암으로 아내를 잃은 건축가 샘(톰 행크스)과 신문기자 애니(맥 라이언)의 운명적인 만남을 그린 이 영화 덕분에 1990년대 헐리우드에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붐을 이루게 되죠. 인상적인 장면을 꼽는다면  커피의 향기와 주룩주룩 내리는 비입니다.  실제 시애틀은 비의 도시랍니다. 월평균 강수량은 59.2mm이고 월평균 강수일수는 10.6일인데 특히 겨울에서 한달의 절반가량 비가 옵니다. 11∼5월이 우기이니 비를 빼고는 시애틀을 얘기할 수가 없을정도죠.

 

워싱턴주는 미국을 대표하는 프리미엄 와인산지이기도 합니다.  많은 비는 포도 재배에 최악의 환경이에요. 포도 생장기에 비가 많이 오면 포도알이 미친듯이 커지는데 이러면 포도 맛과 향의 응집력이 떨어져 와인을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게되죠. 여름철에 1년 강수량의 대부분이 집중되는 한국에서 양조용 포도를 재배하기 어려운 까닭이죠. 

 

그렇다면 이처럼 비가 많은 워싱턴주에서는 어떻게 포도가 잘자랄까요. 바로 시애틀과 워싱턴주 최대 와인산지 콜럼비아 밸리(Colombia Valley)  사이에 놓인  굉장히 높은 캐스캐이드(cascade) 산맥때문입니다. 평균 해발고도가 2000m이고 레이니어 산(4394m), 베이커산(3276m) 등 3000m 넘는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 서 있답니다. 이 산맥이 태평양에서 오는 축축하고 서늘한 기운과 비구름을 완벽하게 막아주는데 이를 ‘비그늘 효과’라고합니다. 캐스캐이드 산맥 왼쪽은 연 강우량이 6m지만 오른쪽은 연 강우량이 15~20cm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건조한 지역입니다. 물을 공급하는 관개시설 갖추지 않으면 포도재배가 불가능할 정도죠. 

 

파워스 와이너리 콜롬비아 밸리 포도밭

콜롬비아 밸리는 프랑스 보르도와 위도가 같아 ‘미국의 보르도’라고 불리기도합니다. 일조량이 미국 나파밸리보다 훨씬 긴 17시간에 달하고 일교차가 매우 큽니다. 포도가 익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당도와 집중도가 좋고 산도가 뛰어난 포도가 생산됩니다. 10년에 한차례는 혹한기가 올 정도로 서늘한데다 토양도 매우 건조한 화산 모래토양이라 배수가 잘돼 필록세라 등 병충해에서도 자유롭답니다. 필록세라가 발생하기 이전부터 자라던  오리지널 양조용 포도나무 비티스 비니페라(Vitis vinifera)가 이곳에 아직 많은 까닭입니다. 이런 천혜의 조건때문에 워싱턴 와인들은 과실맛이 좋고 산도와 당도가 잘 균형을 이루게 된답니다. 

 

빌 파워스(오른쪽)
미국 워싱턴주 최초 유기농 포도밭 배드거 마운틴 빈야드

이런 콜럼비아 밸리에서 전설로 기억되는 인물이 ‘워싱턴 오가닉 와인의 아버지’ 빌 파워스(Bill Powers)입니다. 그가 세운 파워스 와이너리(Powers Winery)는 1988년부터 모든 포도를 유기농으로 재배하기시작해 지금까지 살충제나 화학 제초제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포도를 키웁니다. 실제 파워스의 배드거 마운틴 빈야드(Badger Mountain Vinyards)는 1990년 워싱턴주 농무국으로부터 유기농 인정을 받은 최초의 포도밭으로 기록돼 있습니다. 

 

한국을 찾은 파워스 와이너리 미키 던(Mickey Dunne) 대표를 만났습니다. 파워스 와인은 비니더스 코리아를 통해 수입됩니다. 그는 1998년부터 파워스와 함께 와이너리를 일궜고 2005년에는 파트너십으로 지분에 참여하다가 2013년 파워스가 세상을 떠나고 아들인 크렉 파워스도 은퇴를 한뒤 지난해 모든 자산을 인수해서 직접 경영하고 있습니다. 

 

빌 파워스 미키 둔 대표

“파워스도 1982년~1987년에는 화학 제초제 등을 사용했어요. 그런데 이런 약품을 사용해 포도를 재배하는 주변 친구들이 많이 아프기 시작한 거에요. 화학 약품때문이었죠. 더구나 와이너리 근처에 집들이 들어서고 야구장도 생겨 아이들이 뛰어놀았는데 아이들 건강에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생각에 모든 농법을 오가닉으로 바꾸기 시작한거죠. 1988년부터 오가닉 농법을 시작했고 3년동안 화학제품을 사용하지 않아야만 받을 수 있는 연방정부 오가닉 인증을 1990년 받게됩니다”.

 

이런 파워스의 시도는 워싱턴 전체 와인 산업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아직까지 오가닉 인증을 받은 곳은 많지 않지만 농약을 줄이면서도 좋은 포도를 생산할수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예전보다는 화학약품 사용을 대폭 줄이게 됐다고 합니다. 사실 콜롬비아 밸리는 건조하고 일교차가 커서 농약을 많이 안쳐도 되는 환경을 갖추고 있었는데 포도재배자들이 이를 잘 몰랐던 것이죠. 

 

빌 파워스 미키 둔 대표

파워스는 와인 양조과정에서 산화방지를 위해 어쩔수 없이 사용해야하는 이산화황(So2)마저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많은 생산자들이 포도를 수확해서 양조장까지 운반하는 과정에서 포도알이 터지면 발효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 So2를 사용합니다. 천연효모를 모두 제거하고 배양된 인공효모를 사용해 입맛에 맞는 와인을 만들어 내기 위해 So2를 쓰기도 하죠. 또 마지막 병입과정에서 와인 산화 방지를 위해 So2를 넣습니다. 물론 So2 허용치는 국가별, 국제적으로 규정돼  와이너리들은 이들 따릅니다. 

 

파워스 와이너리 홀스 해븐 힐스 포도밭 전경

 “미국에서 오가닉으로 인증 받으려면 와인메이킹때 So2를 절대 사용하면 안됩니다. 다만 포도밭 경작할때는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So2는 들어갈 수 밖에 없죠. 국제 규정에 따라 병입할때 So2를 소량 사용해도 되는데 파워스는 이마저도 안합니다. 파워스는 또 화이트 와인은 불순물을 걸러내는 필터링도 전혀 하지 않고 있답니다”. 파워스 와인이 ‘자연주의 와인’으로 불리는 까닭이죠.

 

물부족 국가 아동을 돕는 파워스 와이너리 문드 오 리슬링(쪽)과 시라 와인

이런 철학은 물부족 국가의 어린이를 돕는 자선사업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파워스는 문드 오(Monde eau) 와인은 수익금 전액을 물부족 국가에 위생적인 물 공급을 위한 뉴욕 자선단체 클린 워터 파운데이션(Clean Water Foundation) 기부합니다. 물 부족국가에서는 위생적인 식수가 모자라 매주 3만명이상이 숨을 거두는데 이들중 대부분은 5세 미안의 어린아이들이랍니다. 문드 오는 ‘세계의 물’이라는 뜻으로  파워스는 ‘포도에서 깨끗한 물로(Turning Vine into Clean Water)’라는 슬로건으로 내걸고 깨끗한 물 공급을 위한 상수도 시설 건설을 지원합니다. 이 와인을 한 병 마실때마다 물부족 국가의 아이들의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셈입니다.

 

파워스 샴푸이 블렌드 리저브
파워스 와이너리 홀스 해븐 힐스 샴푸이 포도밭 전경

파워스 샴푸이 블렌드 리저브(Powers Champoux Blend Reserve)는 콜롬비아 밸리에서 뛰어난 포도밭이 몰려 있는 홀스 해븐 힐스(Horse Heaven Hills)에서도 샴푸이 포도밭의 포도 100%로 만들었습니다. 카베르네 소비뇽 68%에 메를로, 카베르네 프랑, 말벡, 쁘디베르도를 섞은 전형적인 보르도 블렌딩 와인입니다. 새오크를 70% 사용해 30개월을 프렌치 오크에서 숙성을 거치는데 블랙베리 등의 검은 과일향, 블랙베리쨈, 말린 스파이스,  카시스, 커피향이 어우러진 복합미가 매력입니다. 특히 봄 아지랑이같은 먼지향의 미네랄이 돋보이네요. 

 

파워스 키오나 빈야드 카베르네 소비뇽 리저브

파워스 키오나 빈야드(Powers Kiona Vineyard) 까베르네 소비뇽 리저브는 콜롬비아 밸리 프리미엄 산지 레드 마운틴(Red Mountain) 생산되는 카베르네 소비뇽 100%를 사용합니다. 블랙베리, 블랙 커런트 등 검은 과실과 담배잎, 스모키 등이 어우러지는 복합미를 잘 살린 카베르네 소비뇽입니다.

 

파워스 피노 누아

파워스 피노누아는 콜롬비아 밸리 피노누아 100% 와인입니다. 2∼3년 정도 사용한 프렌치 오크에서 18개월 숙성해 오크향을 절제있게 잘 다스렸습니다. 블랙 체리, 블랙 베리, 자주와 건과일향과  삼나무, 라일락 등의 꽃향에 카라멜향, 타르, 쵸콜릿 등 끝을 알수 없는 향들의 잔치가 펼쳐집니다.

 

파워스 비오니에

파워스 비오니에(Powers Viognier)는 콜롬비아 밸리의 비오니에 100%로 빚습니다. 비오니에는 프랑스 북부 론지방에서 주로 재배하는 아로마가 매우 풍부한 화이트 품종입니다. 주로 큰 흰꽃향이 느껴지고 레몬 껍질, 복숭아 등의 맛있는 과일향과 신선한 산도 미네랄이 어우러지며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 줍니다.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