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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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마흔에 찾아온 사춘기

#1. “올해가… 마지막입니까?”, “네, 그러네요. 만 40세가 되셨으니까요. 수고 많으셨네요.”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민방위통지서를 뚱하니 읽어보다 나이 기준이 떠올라 구청 담당자에게 걸었던 전화였다.

#2. 두어달 전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보내온 우편은 ‘생애전환기 건강검진표’였다. 만 40세와 66세에 받는단다. 생애전환기라는 단어가 자꾸 눈에 걸린다.

#3. “에이, 선배는 이제 중년이죠. 중년” 술자리에서 승강이를 벌이던 후배의 말에 욱해 퍼뜩 휴대전화를 꺼내 검색했다. ‘중년: 마흔 살 안팎의 나이. 또는 그 나이의 사람. 청년과 노년의 중간을 이르며…(표준국어대사전).’ 고려대한국어대사전의 풀이는 조금 더 단호해서 심술이 난다. ‘한창 젊은 시기가 지난 40대 안팎의 나이.’

이정우 외교안보부 기자

지난해 1월1일 떡국을 먹는 바람에 이미 한국 나이 기준으로 앞자리에 ‘4’가 붙었지만 그때만 해도 별 충격은 없었다. ‘점점 더 멀어져 간다. 머물러 있는 청춘인 줄 알았는데…’라는 서른 즈음에(김광석) 가사에 딱히 공감하지 못해 시큰둥했던 30대의 시작과 비슷하게 마흔도 그렇게 찾아왔나보다고 느끼는 정도였다.

그러나 최근의 이러한 ‘나이 자각’ 계기들을 경험한 뒤 곱씹어보니 분명 1∼2년 새 적잖은 변화가 있었다. 아니 사실은 개인적으로는 큰 변화였다. 먼저 건강에 대한 부분이다. 먹은 것보다 보관기한이 지나 버리는 게 더 많았던 비타민, 영양제를 매일 아침 챙기는가 하면 어디에 좋다고 하는 음식에 젓가락이 한번 더 들어가는 일이다. TV의 건강 관련 프로그램도 유심히 보게 되고, 비슷한 증상이 있다는 생각이 들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던 일도 있었다. 어지간해선 상비약으로 버텼던 예전과 달리 ‘혹시…’하며 병원을 찾는 빈도도 제법 늘었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고민이 부쩍 늘어난 것도 분명하다. 예컨대 아직 입학도 하지 않은 아이의 교육에 대한 고민이라든가,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은행 대출에 대한 고민, 퇴직 후에 대한 고민, 행여 머리카락이 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고민, 그리고 이러한 고민들이 늘어나는 데 대한 고민 등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없던 일이었다. 이쯤 되니 나는 알게 모르게 마흔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일종의 ‘나이듦’의 스트레스로 방어기제가 작용한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마흔살이 더는 청춘이 아니라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지만, 나이를 먹었다고 하기에도 모호한 경계에 있다. 아이와 어른의 과도기에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춘기처럼 마흔이 제2의 사춘기로 불리는 이유다. 마흔에 더 이상 미혹되는 일이 없었다는 공자의 말은 사실일까.

누구나 나이가 들고, 마흔을 겪었거나 겪게 된다. 현재로써 이 마흔의 두려움을 달래는 방법은 그 변화를 성장 과정의 하나로 받아들이는 게 전부일 것 같다. 축구 전반전을 마친 하프타임에 라커룸에서 축구화를 다시 조여 매고, 전반전보다 체력은 떨어졌을지언정 더 화려한 경기를 할 수 있기를 꿈꿔보는 것이다. 기립박수를 받는 극장골도 후반전에서야 가능한 일이니까.

 

이정우 외교안보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