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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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전역사

‘국민검사’로 불렸던 안대희 고검장은 퇴임사에서 “불안정한 인사시스템은 전근대적인 지연·학연·혈연 등에 의한 연고주의가 침투하게 만들어 급기야는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수사의) 독립을 취약하게 만든다”고 했다. 기소권·수사권 일부를 빼앗길 운명에 처한 검찰을 보면 13년 전 그의 지적을 귀담아듣고 조직을 정비하지 않은 게 후회스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랜 기간 몸담으면서 경륜을 쌓은 이들이 떠나면서 남긴 충고는 조직을 위해서라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군 조직에도 쓴소리를 아끼지 않은 고참들이 있다. 신원식 육군중장은 2016년 초 전역하면서 “모두가 평화를 말할 때 묵묵히 전쟁에 대비하라”고 했다. “통일의 과정이 아무리 평화롭더라도 그 완성은 총구로부터 나온다”고 했다. “통일은 대박”이라며 환상을 퍼트리려고 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 때 했던 충고다. 그가 전역한 직후 북한은 1차 핵실험을 했고 대포동미사일을 시험발사했다. 이런 충고를 보면 ‘취임사는 꿈으로 쓰고, 퇴임사는 발자취로 쓴다’는 말은 낭만파에게나 어울린다. 일했던 조직에 대한 미련과 애정, 후회가 교차하는 인사들은 발자취만으로는 퇴임사를 채우지 못한다.

박찬주 전 육군대장도 뒤늦게 전역사를 내놓았다. 40여년을 군문에 종사한 그는 “정치가들이 평화를 외칠 때 전쟁의 그림자가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왔다는 각오를 가져야 한다”며 “평화를 만드는 것은 정치의 몫이지만 평화를 지키는 것은 군대의 몫”이라고 했다. 또 “힘이 뒷받침되지 않은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니다”고 경고했다. 그는 공관병 갑질 의혹이 제기되자 문재인 대통령이 유감을 표명하면서 군 검찰 수사를 받아 만신창이가 됐다. 1년 8개월 만에 명예회복을 한 뒤 전역사를 썼다. 그는 세월호 유가족 사찰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목숨을 끊은 전 기무사령관 이재수 장군에 대해 “백합 같은 인품과 샛별 같은 지성의 소유자”라고 평했다. 은유적 표현에 그의 명예가 회복되길 바라는 심정을 녹여놓았다. 군의 적절한 준비태세를 촉구하는 그의 전역사는 군 조직에서 반향을 일으켜야 한다. 검찰 꼴 나지 않으려면.

한용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