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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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0살 향나무가 들려주는 궁궐 고목 이야기 [S 스토리]

궁·왕릉의 수백년 된 수목화초들 / 역사의 한 부분이자 귀중한 유산

750살쯤 될 거라더군. 궁궐에 가장 나이 많은 나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워낙에 오래된 일이라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네. 자네들이 그렇다니 그러려니 할 뿐…. 날 아는 사람들이 제법 있을 걸세. 창덕궁을 관람해봤다면 한번쯤 마주하지는 않았을까. 후원을 돌아보고 돈화문으로 내려오는 길에 있는 봉모당 뜰앞의 향나무(천연기념물 194호)라네.

 

날 보고도 그냥 지나치기가 쉽지 않았을 걸세. 용이 승천하는 듯한 모습에 감탄을 자아내는 이들이 대부분이네. 뽐낼 게 자태뿐이겠는가. 태종 임금께서 창덕궁을 건립한 게 1405년이니 이곳에서 조선의 흥망성쇠를 내내 지켜보았다네. 19세기에 창덕궁, 창경궁을 사실적으로 그린 ‘동궐도’에 내 모습이 선명한 건 그때의 사람들도 나를 특별히 여긴 때문일 테지.

 

어디 나뿐이겠는가. 수백 년을 살아오며 궁궐의 격조 높은 경관을 만든 나무, 화초가 부지기수고, 궁궐에 살았기 때문에 자네들 역사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네. 임금들께서 잠든 왕릉의 그것들 또한 마찬가지지.

 

750살 먹은 나무가 들려주는 궁능의 수목, 화초 이야기 한 번 들어보시려나.

 

궁궐을 제대로 즐기는 힌트일 거고, 가장 특별한 관리를 받는 식물 이야기이며 지금 자네들이 역사를 대하고, 가꾸는 방식에 대한 성찰의 한 가닥일 수도 있을 게야.

 

671살 금천교 느티나무 창덕궁 금천교 앞의 느티나무. 수령이 671년으로 조사된 이 나무는 창덕궁의 전통 경관을 이루는 주요한 요소이자 창덕궁 역사를 이루는 한 부분이다. 문화재청 제공

#궁궐의 경관이자 역사인 수목화초

 

요즘처럼 꽃구경, 나무구경이 제격인 때도 없을 거야. 겨울을 끝낸 수목화초들이 몸밖으로 밀어 낸 꽃과 신록이 한창일 때지. 봄의 전령이라고 할 만한 꽃들이 많이 지기는 했으니 조금 아쉬울 순 있겠네. 얼마 전까지 낙선재 뒤편 상량정 인근의 돌배나무가 하얀 꽃으로 뒤덮여 기가 막혔다네. 이제는 신록이 절정이네. 막 피어난 잎의 싱그러운 초록에 빠져들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경복궁의 수목은 3000여 그루, 창덕궁은 1만6700여 그루, 창경궁은 4만8000여 그루라고 하니 그것들이 뿜어낸 신록에 궁궐에서 한창인 궁중문화축전을 찾은 관람객들의 눈을 사로잡고 있네.

 

화계(花階)도 빼놓을 수 없을 테야. 경복궁 교태전 아미산 화계가 유명하지. 창덕궁 의두합은 효명세자가 책을 읽고 시를 지었던 건물로 유명한데, 올봄에 화계를 정비해 놓았네. 어느 화계든 계절에 따라 꽃을 피우는 진달래, 철쪽, 모란, 옥잠화, 맥문동 등 관목류와 초화류를 심어두기 때문에 언제 가도 눈에 담을 것이 있을 걸세. 조만간 왕릉을 테마형 숲길로 조성해 공개를 확대한다는 이야기도 들었네. 왕릉 숲길은 가려 심은 수목이 만든 경관에다 그곳에 잠든 임금, 왕비의 역사가 어울려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할 거야.

 

궁능의 수목화초에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어 각별하기도 하지. 경복궁 함원전 뒤 우물가 화계의 앵두나무를 보면 세종 임금을 떠올려보시게. 세종께서는 앵두를 무척 좋아해 아들 문종 임금이 세자 시절 경복궁 후원에 손수 앵두를 심었다는 일화가 전하네. 세자 시절 머물던 전각을 ‘앵두궁’이라 부르기도 했지. 창경궁 옥천교에 있는 자두나무는 조선을 창업한 이씨의 나무일세. 흔히 ‘오얏’이라 불렸는데 경북대 박상진 명예교수가 쓴 ‘궁궐의 우리 나무’를 인용해보지.

 

“대한제국이 들어서면서부터 오얏꽃은 왕실을 대표하는 문장(紋章)으로 사용되었다. …창덕궁 인정전의 용마루와 덕수궁 석조전의 삼각형 박공, 순종황제 어가, 대한제국 군대 계급장에서도 오얏꽃 문장이 들어갔다.”

 

창덕궁을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회화나무는 궁궐의 권위를 상징한다네. 궁궐 조성원리를 담은 ‘주례’라는 책에는 신하들의 공간 삼정승의 자리에는 회화나무를 심어 자리를 표시했다는군. 창덕궁 입구에 서 있는 8그루를 묶어 ‘창덕궁 회화나무 군(群)’(천연기념물 472호)으로 보호하고 있지.

 

#특별한 인상과 관리… 궁궐의 노거수

 

내가 700년 넘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뭘까. 궁궐에 살고 있다는 걸 빼면 설명이 쉽지 않네. 함부로 베어갈 수가 없고, 담당 관청까지 두어 관리했으니 이만 한 세월을 견딜 수 있지 않았겠나. 나뿐이 아니네. 궁궐에는 ‘노거수’(老巨樹)라 불리는 나무들이 있네. 오래 살아서 그만큼 풍채가 좋고, 희귀성이 높은 나무들을 말함이지. 문화재청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경복궁(28그루), 창덕궁(85그루), 창경궁(35그루), 덕수궁(33그루)과 종묘(2그루)에는 100년 이상 궁궐에서 자란 노거수가 183그루라는군. 느티나무, 향나무, 수양버들, 주목, 회화나무 등인데 내 입장에서야 100∼200년 된 것들이야 아이들인데, 자네들 보기엔 다르겠지.

 

살았던 세월이 길었던 만큼 예나 지금이나 특별한 인상을 주었을 것이고, 그에 따른 대접을 받은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2016년 창덕궁, 창경궁 노거수의 수령조사를 한 적이 있다네. 이 중에 34그루가 200살 이상인 것으로 추정되었지. 정확하진 않으나 동궐도가 1820년대 말에 그린 것임을 감안하면 이 나무들은 당시에 궁궐에 살고 있었다고 봐야겠지. 동궐도에 다 그려넣어 확인이 되는 13그루라더군. 몇 그루만 소개해보자면 창덕궁 금천교 주변의 느티나무가 671살로 나랑 비슷한 시간을 살았네. 희정당 오른쪽의 느티나무 수령도 484살으로 측정되었군. 창경궁의 선인문 주변 회화나무는 250살 정도라는군.

 

우리가 이렇게 긴 세월을 살아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지는 마시게들. 창덕궁 노거수는 82그루(1976년)이던 것이 73그루(1993년), 71그루(2002년)로 조금씩 줄어왔네. 1976년 조사에서 300∼500살로 측정되어 보호, 존속의 가치가 컸던 나무들이 1993년에는 사라져 버렸네. 노인우대가 필요하지 않겠나. 어디에 어떤 노거수들이 있는지 조사해 생육환경을 정비하고 수형 관리, 병충해 관리 등도 필요하지 않겠나.

 

향나무 창덕궁의 향나무. 향나무는 700년을 넘게 살아 가장 나이 많은 궁궐 수목으로 꼽힌다. 문화재청 제공

#‘건물이 궁능의 전부는 아니다’, 부실한 수목 관리

 

관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그 이야기를 좀 더 해보지.

 

앞서 조금 언급했네만 궁능의 나무들은 오래전부터 특별한 관리를 받았다네. 고려시대에는 ‘내원서’(內園署)라는 곳이 있었네. 조선시대에는 ‘장원서’(掌苑署)가 있었지. 지금으로 치면 장·차관급인 제조 1명, 5급 공무원인 별제 3명, 7급인 별감 20명을 두었다네.

 

살구나무 덕수궁 석어당 앞의 살구꽃. 봄이 되면 하얗게 꽃을 피어낸다. 문화재청 제공

지금은 문화재청 궁능유적본부에서 설치한 양묘장이 비슷한 기능을 하네. 궁능의 전통조경정비, 경관유지에 필요한 자원을 보존하고 양묘, 생산하는 곳이지. 경기도의 사릉, 동구릉, 홍릉과 유릉, 융릉과 건릉, 삼릉 5곳에 약 13만2000㎡의 면적으로 조성되어 있어.

 

궁궐, 왕릉이란 특별한 장소에서 자라는 것인 만큼 그에 걸맞은 관리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런 조직이 필요하지. 양묘장에 가면 내 후계목이 자라고 있네. 가지의 일부를 잘라가 키우고 있는 것이니 나를 복제한 셈이지. 가치가 큰 수목들은 이런 식으로 후계목을 두고 있다네. 씨를 받아 키우는 것들은 자식이라고 해야 하겠지. 궁궐에서 자란다면 야생화도 따로 키운다네.

 

궁능의 수목, 화초 특유의 형질과 수형을 유지하기 위한 것일세. 궁궐의 소나무처럼 곧게 쭉쭉 자라는 걸 찾는 게 쉽지 않네. 창덕궁의 매화나무, 덕수궁의 살구나무, 창경궁의 오얏나무 같은 건 같은 형질의 것을 구하기가 어렵다지. 세종께서 즐기셨던 궁궐의 앵두나무는 개량이 이어지다 보니 이제는 토종의 것을 찾기가 힘든 사정이라더군.

 

전통 조경 경관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네. 화계를 예로 들어볼까. 여기에 심는 나무, 화초는 때마다 수요에 맞춰 바꿔줘야 하고, 나무가 크게 자라 화계를 이룬 돌들을 밀어내는 걸 방지해야 하네. 낙선재 주변 화계는 너무 크게 자란 소나무 때문에 돌들이 조금씩 어긋나 있는 상태라네.

 

이런 일들을 하는 양묘장에 직원이 몇 명인 줄 아는가. 문화재청 소속 공무원 2명, 촉탁직 3명이라네. 필요에 따라 비정규직을 고용하긴 하는데, 신분이 불안하고 급여도 좋지 않으니 전문적인 인력을 구하기도 쉽지 않아. 사정이 이러니 궁능의 전통조경 원형의 복원, 관리, 고증 연구, 자원조사 등이 힘들어. 양묘장은 전통 조경 유지를 위한 식물생산에 한계가 크지. 이런 상황이 무척 아쉽고, 자네들에게 섭섭하기도 하다네.

 

궁능유적본부 나명하 본부장 직무대리의 말을 끝으로 긴 이야기를 마무리지을까 하네.

 

“궁능의 수요에 맞춰 주기적으로 수목이 공급되어야 하는 데, 제대로 된 수요조사조차 어려운 사정입니다. 각 궁궐을 대표하는 나무들이라면 후계목을 제대로 키워야 하는데, 그것도 힘든 사정이죠. 궁능의 관리와 복원은 건물에만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됩니다. 수목을 제대로 키우고, 가꿔서 온전한 모습을 유지해야 합니다.”

 

◆ 울창한 송림, 일제 거치며 사라져 ‘씁쓸’

 

궁궐의 전통 조경과 식생을 보여주는 가장 귀중한 자료가 동궐도(사진)이다. 1820년대 말 제작된 것으로 물 오른 버들가지와 만개한 철쭉, 과일과 꽃을 보기 위해 심은 복숭아와 살구나무가 분홍색 꽃을 만개하여 봄의 풍경을 묘사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동궐도를 현재의 식생분포와 비교해 보면 관목류인 진달래, 철쭉 등은 많이 남아 있지만 건물 주변과 후원의 울창한 송림은 대부분 사라졌다. 조선시대에 엄격히 관리되어 오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많은 부분 벌채되었던 것이다. 식생경관을 성격에 따라 나누면 인공식재지, 자연 생육지, 혼합지로 구분된다. 인공식재지는 전각 주변에 인위적 식재가 이루어진 곳이다. 대부분 상징적 공간이나 완상 또는 과수 재배 등과 같은 특별한 목적으로 조성된 곳으로 창덕궁 돈화문과 금천교 주변, 희정당 화계, 동궁의 과원 등이 대표적이다. 자연생육지는 후원에 해당한다. 임금이 즐겨 찾던 장소와 동선 주변으로 자연경관을 벗 삼을 수 있도록 부분적 관리가 이루어진 곳으로 보인다. 혼합지는 인공식재지와 자연생육지의 경계부로 이해된다.

 

동궐도에 묘사된 조선시대 온실 ‘창순루’도 흥미롭다. 반타원형체의 둥근 지붕, 창설이 없는 문과 섬돌이 있고, 마당엔 붉은 꽃이 핀 화분이 놓여 있다. 실내 온도를 데워주는 벽장이라는 가온 시설을 갖춘 목조건물이다. 경희궁의 경우엔 ‘서궐도안’을 통해 식생을 짐작해볼 수 있다. 후원에 소나무와 화목류를 함께 식재한 패턴을 볼 수 있고, 전각 주변으로 낙엽수와 화관목을 군락으로 심은 것도 보인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