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 등 국내 원자력 기관들이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경수로 수출 대상국인 아랍에미리트(UAE)를 의식해 원전 운영 진단 프로그램인 ‘냅스’(NAPS) 등 핵심 보유 기술을 해외에 너무 쉽게 내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특히 우리가 냅스를 넘겨준 미국 WSC사가 한국형 경수로의 라이벌인 러시아 기술진이 운영하는 것으로 밝혀져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자유한국당은 원전기술 유출 사건이 문재인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무관하지 않다며 당 차원의 진상조사에 나서겠다고 19일 밝혔다.
한수원은 한국형 원전 기술이 해외로 대거 유출됐다는 보도와 관련해 “2015년 UAE 원전 시뮬레이터 공급계약에 따라 냅스를 주계약자인 ENEC(UAE 전력공사)에 12개 프로그램 중 9개를, 2018년 말에는 한국전력기술이 프로그램 전체를 WSC사에 제공했다”고 의혹을 부인했다.
문제가 된 WSC와의 거래는 ‘비전략물자’로 판정받아 원자력통제기술원(KINAC)의 허가를 거친 정당한 기술수출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의문투성이라는 게 원자력 업계의 지적이다. 냅스를 제공받은 WSC는 자사 자료에서 “냅스와 관련된 14개 모듈을 공급받았다”고 밝혔다. 실제 냅스는 14개 프로그램으로 구성돼 있다. 넘겨준 전체 프로그램이 12개뿐이라는 한수원 첫 해명부터 사실과 다르다.
WSC에 넘기는 과정에서 심사기준이 허술한 ‘비전략물자’로 지정받은 경위도 석연치 않다.
부분적인 실행 프로그램이라면 몰라도 소스코드는 전략물자 가운데 ‘전용품목’으로 분류된다. 원래 목적 이외에 핵무기 개발에 이용할 가능성이 큰 ‘전용품목’은 국내 기술 보호 차원을 넘어 국제적인 핵통제 기준이 적용된다.
원전 설계업체의 한 관계자는 한국전력기술이 KINAC에 프로그램 목록을 줄여 제출하는 꼼수를 부렸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WSC에 프로그램 전체를 넘긴 것이 적절했냐는 문제도 제기된다. WSC가 그간 주도권을 행사할 수 없었던 것은 냅스 등 한국형 원자로 ‘APR-1400’의 핵심기술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냅스를 포함한 기술을 넘겨받으며 시뮬레이터 개발사업을 완전히 장악했다. WSC는 대표를 비롯한 핵심 기술진은 모두 러시아 사람들로 구성됐다. 러시아는 최근 국제 원자력발전소 건설시장을 휩쓸며 우리나라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르고 있다.
한국전력기술이 냅스를 정당한 대가를 받고 팔았는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한수원 출신의 한 인사는 “냅스는 장사밑천이나 다름없는 상용코드”라며 “경쟁업체에 소스코드를 넘겼다면 앞으로 시뮬레이터와 관련된 일은 국내건 해외건 모두 그 회사에 의존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세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탈원전 정책이 원전기술의 탈대한민국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전=임정재 기자, 이창훈 기자jjim61@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