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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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 재무컨설팅'으로 현혹…알고보니 보험 판매원

직장인 박모(28)씨는 최근 무료로 재무 설계를 해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마침 재테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박씨는 재무 컨설턴트라는 사람의 제안에 응했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박씨는 ‘FC(Financial Consultant)’라는 명칭이 적힌 명함을 받고 기본적인 재무 관련 상담을 받았다. 잘 몰랐던 재테크 관련 분야라 재미도 느낀 박씨였다. 게다가 재무 컨설턴트가 동년배라 ‘20대의 재테크’라는 공감대도 느꼈다.

 

하지만 박씨는 두번째 자리부터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씨가 생각했던 재테크 상담은 주식이나 펀드, 채권 등 다양한 분야를 비교 분석하는 것이었는데, 해당 FC는 직간접적으로 종신 보험에 가입할 것을 권유했다.

 

박씨는 현란한 FC의 말솜씨에 휘둘려 계약까지 이뤄질 뻔 했으나, 계약 직전 부모님의 만류로 한 번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후에 알아보니 해당 FC가 제시한 종신 보험은 원금 회수도 어려운 상품이었고, 10년 넘게 자금 유동도 제한되는 상품이었다.

박씨는 FC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으나 해당 컨설턴트는 연락을 끊었고, 알고보니 그는 보험대리점에 소속된 영업사원이었다.

 

재테크에 관심이 많지만 이에 대해 잘 모르는 20∼30대를 상대로 ‘재무 컨설팅’을 명목으로 보험 가입을 유도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물론 보험설계사가 스스로를 재무 컨설턴트라고 부르며 재무 상담을 하는 것은 법에 저촉되지 않지만, 일부 설계사는 자신이 보험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추면서 영업에 나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20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각 보험회사, 보험대리점에서 보험설계사를 지칭하는 용어는 10개 이상이다. 생명보험회사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명칭은 ‘FC(Financial Consultant)’, ‘FP(Financial Planner)’ 등이다. 손해보험사는 ‘RC(Risk Consultant, 위험관리사)’를 주로 사용한다.

 

이밖에 ‘PA(Prime Agent)’, ‘LC(Life Consultant)’, ‘FSR(Financial Services Representative)’, ‘MP(Master Planner)’, ‘SFP(Special Financial Planner)’ 등의 명칭을 사용하는데 하나같이 ‘보험(Insurance)’이라는 문구는 드물고, 영어 일색이라 일반인들로 하여금 혼돈을 주는 편이다.

 

이외에도 자의적으로 ‘금융전문가’, ‘종합금융전문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같이 일부 보험설계사들이 보험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시각을 줄이기 위함이다.

한 보험설계사는 “아무래도 보험 가입을 권유하면 대부분 경계적인 태도로 돌변하기 때문에 재무 상담 명목으로 접근하는게 더 편하다”며 “특히 유명 대형 보험사 소속 설계사가 아닐 경우 고객들이 더 경계하기 때문에 금융상담을 내세운다”고 말했다.

 

이같은 보험 영업 형태가 불완전 판매로 이어진다고 할 수는 없으나,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측면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게다가 보험설계사라는 명칭이 부정적이었던 배경으로 종사자나 보험사가 자초한 측면이 큰 점에서 애꿎은 소비자에게 책임을 돌린다는 지적이다..

 

‘명칭의 혼란’은 소비자의 문제만은 아니다. 취업준비생 역시 ‘보험’이라는 명칭 없는 보험사 인쿠르팅에 발을 들여놓는 실정이다.

 

일례로 지난 겨울 취업시즌 대학가에서는 ‘겨울방학 인턴 금융전문가과정’, ‘청년 금융체험단’ 등의 안내로 취준생을 인쿠르팅 하다가 뒤늦게 보험설계사 모집이라는 사실이 알려서 혼선을 빚기도 했다.

 

일부 취준생들은 보험설계사인지 모르고 발을 들여놨다가 보험 판매 압박을 받고 가족과 친구 등에게 판매를 하고 금방 일을 그만두는 일도 있었다.

 

백모(31)씨는 “재무상담사라고 해서 일을 시작한건데 알고보니 보험 영업이었다”며 “취업이 절박한 취준생에게는 정말 달콤한 유혹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법 상 영업현장이나 인쿠르팅에서 보험설계사 명칭을 사용하지 않아도 제지할 근거는 없다. 아울러 불완전 판매라고 볼 수 없다는게 규정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선 “보험설계사를 재무설계사, 금융전문가라고 부르는 것은 과장이며 소비자를 기만하는 행태”라고 비판했다.

 

김범수 기자 swa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