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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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먹다남은 와인 어떻게 보관해야 할까

일본 도쿄 신주큐 와인바 마루고5

젊은이들의 거리인 일본 도쿄 신주쿠. 지하철 JR 야마노테선 신주쿠역에서 걸서 5분정도의 거리에 직장인들에 인기가 아주 높은 와인바가 있습니다.  착한 가격으로 와인과 맛난 메뉴를 맛볼수 있는 와인포차 같은 마루고(Marugo)입니다. 신주쿠에만 마루고V, 마루고2, 마루고 그란데 3개가 있는데 기자는 몇해전 마루고V를 찾았습니다. 이곳에서는 부담없는 가격에 와인을 즐길 수 있는데 바로 와인을 잔술, 즉 글라스 와인으로 팔기 때문이에요.

 

마루고5 글라스와인 퓔리니 몽라셰

종류도 다양해서 글라스로 마실수 있는 스파클링, 화이트, 레드 와인이 20여종입니다. 크레망은 700엔, 샴페인은 900엔에 마실수 있더군요. ‘오늘의 샴페인’은 매일 바뀌는데 이날은 듀발 르로이(Duval Leroy)가 나왔습니다. 화이트 와인도 500엔짜리 포르투갈 베르데호 품종으로 빚은 와인부터 2300엔짜리 프랑스 부르고뉴의 유명한 마을단위 프리미엄 와인 퓔리니 몽라셰(Puligny Montrachet)까지 다양합니다.

 

일본 도쿄 오모테산도 와인바 와인즈 하우스

도쿄 미나토구 미나미 아오야마(Minami Aoyama)의 핫플레이스 오모테산도(表參道)에는 얼마전 한국에 1호점이 오픈해 큰 관심을 모은 커피전문점 블루보틀(Blue Bottle)이 있습니다. 오모테산도역에서 걸어서 5분거리인데 블루보틀 골목을 따라서 조금만 더 안으로 들어가면 간판이 식물로 뒤덮힌 와인바 와인즈 하우스(Wine House)가 나타납니다. 이곳에서 샴페인과 퓔리니 몽라셰 화이트 와인을 글라스로 마실 수 있는데 아주 커다란 부르고뉴 잔에 듬뿍듬뿍 따라줍니다. 

 

도쿄 오모테산도 와인즈하우스 퓔리니 몽라셰 글라스와인

도쿄 시나가와 고탄다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와인바 에셰죠(Echezeaux). 여기서도 500엔대부터 2600엔대까지 다양한 글라스 와인을 판매합니다. 1병값으로 다양한 와인을 맛볼수 있어 혼술러들에게도 인기랍니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자리가 없을 정도에요.

 

이처럼 일본 와인바나 레스토랑에서는 고급 와인들을 저렴한 가격의 잔술로 마실수 있답니다. 와인가격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저렴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종가세를 적용해서 1만원짜리 와인과 100만원짜리 와인은 세금이 100배 차이납니다. 고가와인으로 갈수록 와인가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종량세여서 1만원짜리 와인과 100만원짜리 와인은 용량이 같다면 세금도 동일해요. 세금 덕분에 ‘착한 가격’에 와인을 마실수 있어 와인마니아들에게는 천국이죠.

 

도쿄 시나가와 와인바 에셰죠

특히 한국에서는 매우 가격이 높은 부르고뉴 마을단위 와인들을 합리적인 가격에 즐길 수 있어 도쿄로 와인원정을 떠나는 마니아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도쿄에 400년이나 된 와인샵이 있을 정도로 아주 오래전부터 와인 문화가 시작된 것도 잔술문화에 한몫합니다.

 

우리나라도 와인바나 레스토랑에서도 이런 다양한 프리미엄 와인들을 착한가격의 잔술로 마실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글라스 와인을 판매하는 곳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보통 하우스 와인으로 레드 1종 화이트 1종씩 내놓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글라스 와인을 좀더 다양하게 갖춰놓은 곳도 있지만 가격이 워낙 비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편이라 잔 와인으로 마시기는 많이 부담스럽습니다. 더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도 와인 세금을 종량세로 바꾸는 논의가 계속 이어지고 있지만 얼마전 발표된 세제개편에서는 맥주만 종량세로 전환하는 것으로 결정돼 당분간 한국 소비자들은 비싼 와인값에 벗어나기 힘든 상황입니다. 

 

이처럼 한국에서 와인을 잔술로 마시기 힘든 것은 세금문제가 크지만 먹다 남은 와인의 보관 문제도 매우 크게 작용합니다. 고가 와인을 오픈했는데 다른 손님들이 찾지않으면 고스란히 업장의 손해로 돌아가기 때문에 업장에서는 다양한 와인을 글라스로 판매하기 어렵답니다. 

 

가정에서도 이런 고민은 마찬가지죠. 요즘 ‘나홀로족’들이 많이 늘었는데 혼자서 와인 한병을 다 마시기는 매우 부담스러운게 사실이에요. 그렇다고 먹다 남기면 보관하는 방법이 마땅치 않습니다. 와인은 보통 산소와 계속 접촉하면 48시간 안에 초산으로 변질됩니다. 먹다남은 와인을 코르크로 막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병속에 있는 산소가 그대로 있고 틈새로 산소가 계속 유입되기 때문이에요. 

 

몇가지 팁을 알려드릴께요. 먹다 남은 와인을 보관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습니다. 남은 와인으로 꽉 채울 수 있는 밀폐가 되는 작은 보관용기에 옮겨담는 방법입니다. 산소가 거의 없으니 밀폐만 잘되면 오랫동안 보관해도 맛과 향을 잘 살릴수 있어요. 하지만 용량별로 보관 용기를 갖출수 없어 실효성이 좀 떨어집니다.

 

베큐빈 와인세이버

이때문에 손쉽게 와인병 안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주는 ‘와인 세이버’가 널리 쓰이고 있습니다. 베큐빈 와인세이버는 인터넷 쇼핑몰에서 1만∼2만원대에 구입할 수 있어 가성비가 뛰어나고 사용방법도 간단합니다. 고무재질의 와인스토퍼를 병입구에 끼우고 스토퍼 상단에 원통형 펌프를 연결해 펌프질을 해서 수동으로 병안에 산소를 제거하는 방식입니다. 산소가 모두 제거되면 딸깍딸깍 소리가 납니다. 이렇게하면 마개를 닫았을때의 상태로 맛과 향이 비교적 잘 유지됩니다. 단점은 완벽하게 진공상태로 보관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기자도 이 제품을 오랫동안 사용했는데 1∼2일에 길게는 1주일정도는 보관이 가능하지만 그 이상은  무리인 것 같더군요. 산소가 서서히 유입되면서 산화가 진행돼 와인의 맛과 향도 떨어집니다. 또 눕혀서 보관하면 와인이 다 흘러버립니다.

 

AIO 와인진공세이버

‘AIO 와인진공세이버’는 이보다 더 강력하게 병속을 진공상태로 만들어줍니다. 와인병 입구에 진공캡을 씌위고 캡 상단에 자동 핸드펌프를 연결해 전원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와인병 안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줍니다. 진공상태가 되면 자동으로 펌프가 멈춥니다. 진공캡은 보급형과 고급형이 있는데 고급형은 진공상태에서 소리가 날때까지 돌리면 이중으로 잠궈 산소를 차단해줍니다. 문제는 가격입니다. 현재 인터넷 쇼핑몰에서 진공캡 2개와 핸드펌프 1개 세트가 9만9000원입니다. 가정이나 업장에서도 부담스러운 가격이죠. 더구나 이런 진공세이버가 놓치는 것이 있답니다. 진공상태로 만들어도 시간이 지나면 와인에 녹아있던 산소가 기화되면서 병을 채운다는 발생한다는 사실. 따라서 자주 다시 펌프질을 해서 산소를 뽑아내야 와인의 상태를 잘 보관할수 있습니다.

 

코라뱅

해외 와인바 등에서 많이 쓰는 미국 제품 코라뱅(Coravin)도 있습니다. 이 제품은 코르크를 빼지않고 주사 바늘처럼 속이 빈 니들로 코르크에 구멍을 뚫은 뒤 아르곤 가스를 주입하면 압력으로 와인이 역류해 뽑아져 나오는 방식입니다. 아르곤 가스같은 ‘와인 프리저브 가스’는 공기보다 무겁기 때문에 와인과 공기를 분리시켜 와인 산화를 막게됩니다. 업체측은 2년 넘게도 와인의 산화를 거의 완벽하게 방지할 수 있다고 소개하는데 역시 가격이 매우 비쌉니다. 코라뱅 홈페이지 기준 가격이 400∼600달러이고 아르콘 가스 개당 가격도 10달러에 달합니다. 아르곤 가스 1개로 다섯번정도밖에 사용할 수 없으니 가격부담이 매우 큽니다. 

 

리퓨어

최근에는 이런 단점을 모두 극복한 새로운 개념의 와인세이버 리퓨어(repure)가 등장해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간단히 마개로 막아놓으면 마개속의 특수 물질이 병속의 산소를 잡아먹어 와인 병속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 주는데 남은 산소농도는 0.05% 정도라고 합니다. 미국의 화학자 톰 루츠(Tom Rutz)가 개발했는데 뒷얘기가 재미있네요. 어느날 어린 아이를 재워놓고 아내와 분위기 있게 와인을 마시다가 깨어나 보채는 아이를 다시 재우느라 와인을 코르크로 막아놓고 잠이 들었답니다. 며칠뒤 산화된 와인을 싱크대에 버리면서 “내가 명색이 화학 박사인데 와인 산화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라고 고민을 하다 귀찮은 진공 펌프나 가스 주입을 하지 않고도 인체에 무해한 성분을 배합해 산소를 없애는 물질을 개발했다고 하네요.

 

마스터 소믈리에 윌 코스텔러

리퓨어를 사용한 마스터 소믈리에, 와인메이커, 레스토랑 매니저들이 ‘엄지 척’을 할 정도로 효과를 높게 평가하면서 최근 대량생산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실제 전세계적으로 250여명에 불과한 마스터 소믈리에 윌 코스텔러(Will Costello), 케빈 보그트(Kevin Vogt), 마이클 미게어(Michael Meagher)등이 가성비 뛰어나고 사용하기도 간편한 와인세이버로 호평하고 있습니다. 리퓨어는 아주 서서히 산화되기 때문에 한달정도는 끄덕없이 막기전의 상태로 와인을 보존합니다. 더구나 가성비가 매우 뛰어납니다. 이 제품은 비디더스코리아를 통해 최근 국내 수입이 시작됐습니다.

 

이 때문에 국내 와인 소비 트렌드를 획기적으로 바꿔놓을 제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가격이 저렴하고 한달이상 완벽한 진공상태로 만들어주니 글라스 와인용으로 오픈했다가 안팔리면 어쩌지하는 걱정을 하던 업장에서 부담없이 프리미엄 와인도 글라스 와인으로 내놓을 있기 때문이죠. 바에서 위스키를 먹다 ‘킵’을 하듯 먹다 남은 와인도 업장에 맡겨 놓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겁니다. 

 

리퓨어 사용실험 테이스팅

리퓨어가 등장하면서 이미 일부 업장에서는 글라스 와인의 종류를 대폭 늘려가고 있다고 합니다. 대구의 와인성지로 소문난 인비노에서는 손님이 주문한 와인이 남아서 가져갈때는 리퓨어로 막아주는 서비스도 시작했습니다. 와인을 좋아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1병 가격으로 다양한 프리미엄 와인을 잔으로 즐길 수 있으니 그저 즐겁기만 하네요. 와인샵에서는 판촉용으로 활용하기 딱입니다. 와인을 사면 리퓨어를 사은품으로 끼워주는 것이죠.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리퓨어의 산소를 잡아먹는 물질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지 알수 없다는 점입니다. 육안으로 확인할수 있는 게이지 같은 것이 있으면 사용하기 더 편리할 것 같네요. 또 눕혀서 보관하면 기능이 떨어질수 있습니다. 스파클링은 압력이 높아 리퓨어를 사용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조만간 스파클링용 리퓨어도 나올 예정이라니 샴페인을 비롯한 스파클링 와인 애호가들에게 꼭 필요한 아이템입니다. 

 

리퓨어 사용 실험 테이스팅

업체측은 리퓨어 1개로 5번 정도는 충분히 사용할 수 있다고 하네요. 리퓨어를 직접 사용해 봤는데 집에서도 여러 와인을 동시에 오픈해 조금씩 즐기는데 아주 유용하더군요.  사용때 주의할 점이 있어요. 리퓨어로 병을 막을때마다 산소제거 기능이 작동되니 와인 한병을 마시면서 계속 닫았다 열었다 하면 산소제거 물질이 금방 소진됩니다. 따라서 먹다 남은 와인을 보관할때만 사용하고 막을 와인 병이 없을 경우는 빈병에 리퓨어를 꽂아놓거나 입구를 테이프로 잘 막으면 더 오래 사용이 가능합니다.  

 

최근 와인업계 관계자들을 상대로 리퓨어를 활용한 와인의 상태를 살펴보는 이색 시음회가 열렸습니다. 한달전에 오픈한 와인을 코르크나 스크류캡으로 막은 와인, 리퓨어를 사용한 와인, 방금 오픈한 와인 이렇게 세가지를 비교 테이스팅했는데 리퓨어를 사용하면 한달 뒤에도 방금 오픈한 와인과 다름 없는 맛과 향을 유지하고 있더군요. 오히려 리퓨어 사용 와인이 가장 맛있다는 평가가 많았습니다. 마시기 알맞게 병 브리딩이 된 상태에서 산소를 차단했기때문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와인 세이버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으니 자신에게 맞는 와인세이버를 골라보세요. 이제 먹다 남은 와인 보관 어떻게 할까 절대 고민하지 말구요.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