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국민이 행복할까. 모든 정부는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은 행복할까. 적어도 수치상으로는 그런 것 같다. 통계청이 발표한 ‘국민 삶의 질 지표’가 지난 3월 역대 최고의 개선 실적을 낸 것으로 확인됐다. 국민 삶의 질이 정말 좋아진 것일까. 고개를 갸우뚱할 수밖에 없다.
통계청의 각종 지표들을 자세히 뜯어봤다. 그랬더니 지난 발표에서 나빴던 지표는 삭제된 게 드러났다. 대신에 좋아진 지표들이 추가됐다. 문재인정부의 삶의 질 개선 정책에 맞춰 통계청이 ‘맞춤 통계’를 내놨다는 논란을 부를 것으로 보인다.
23일 세계일보가 ‘국민 삶의 질 지표’ 홈페이지와 통계청을 통해 받은 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지난 3월 발표된 ‘2019년 3월 기준 삶의 질 지표 종합상황표’에 포함된 71개 지표 중 54개(76%)가 전기 대비해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은 2015년부터 지난 3월까지 모두 9차례 국민 삶의 질 지표를 공개했는데, 전기 대비 지표 개선율이 70%를 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통계청은 한 해 두세 차례 삶의 질 지표 종합상황표를 통해 지표별로 전기 대비 ‘개선’ ‘보합(동일)’ ‘악화’로 추세를 판정하고 비율을 공개한다. 지표별로 업데이트 주기는 서로 다르다.
지난 3월 발표된 삶의 질 종합상황표는 △소득·소비·자산 △고용·임금 △주거 △건강 △교육 △여가 △가족·공동체 △시민참여 △안전 △환경 △주관적 웰빙 등 11개 분야 71개 지표로 구성됐다. 지난해 발표 때의 12개 분야 80개 지표와 비교해 크게 달라졌다. 통계청은 이전의 17개 지표를 삭제하고 대신 8개 지표를 신설했다. 25개(31.3%)의 지표를 교체한 셈이다. 특히 지난 발표에서 실적이 좋지 않은 지표들이 대거 삭제되고 좋아진 지표가 추가된 것으로 확인됐다.
개편된 지표를 보면 소득·소비·자산 분야에서 이전 지표에 있던 ‘지니계수’가 지난 3월 사라졌다.
지니계수는 소득 분배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수치로, 매번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던 지표다. 건강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꾸준히 좋지 않았던 ‘고혈압 유병률’ ‘당뇨병 유병률’ 지표가 삭제됐다. 주거 분야에서는 ‘주거비용’ 지표가, 교육분야에서는 ‘평생교육 참여율’ ‘학업중단율’ 지표 등이 없어졌다. 모두가 2018년 5월 발표 때 전기 대비 실적이 나빴던 지표들이다. 반대로 ‘토양환경만족도’ ‘소음만족도’ 등처럼 개선된 지표가 새로 들어갔다.
지표 신뢰도 자체를 의심케 하는 항목도 있다. 올해 초 재난 수준까지 보이며 추가경정예산 편성의 이유가 된 ‘미세먼지 농도’ 지표가 개선된 것으로 나온 것이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표 개선율을 높이기 위해 의도적으로 지표 체계를 개편한 것은 아니다”면서도 “내부적으로도 개선율이 높게 나와 놀랐다”고 말했다.
세종=박영준 기자 yj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