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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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실외기실 문이 왜 없지?”…아파트 하자분쟁 한 해 4000건

입주민·시공사 갈등 반복에 제도개선 목소리 커 / 설계와 달리 시공돼 면적 줄어 / 출입문 못 달고 열기 잘 안 빠져 / 공사업체선 “설계상 문제” 발뺌 / 시공 과정서 전문가 점검 진행 / ‘공동주택 품질검수’ 대안 거론 / 일부 지자체 시행 … 확대 추진
지난 2월 사전점검 당시 다른 가구보다 실외기실 세로 길이가 250㎜ 작아 문을 설치하지 못한 A아파트 일부 가구 실외기실 모습. 정상적인 경우 문을 밀어 열 수 있어야 하지만 이 경우 내부에 놓인 실외기에 걸려 문을 설치하더라도 열 수 없다. A아파트 입주민 제공

“에어컨 실외기는 설치돼 있는데 그 실외기실에 문이 없더라고요.”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의 신축 아파트인 A아파트 입주민 B씨는 입주 약 한 달 전인 지난 2월 말 아파트 사전점검 중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계약 당시 선택했던 시스템에어컨과 실외기는 정상 설치돼 있었는데 정작 실외기가 설치된 공간인 실외기실은 문 없이 훤히 뚫려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실외기실 세로 길이가 애초 같은 종류의 다른 가구보다 250㎜ 작게 나온 탓에 문을 열면 실외기와 부딪히게 돼 그때까지 문을 달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런 문제에 직면한 건 B씨를 포함해 290여가구에 달했다.

 

29일 아파트 주민과 업계 등에 따르면 이들은 이달 초 이 같은 실외기실 하자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내용증명을 보냈지만 시공사·시행사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이런 식으로 신축 아파트의 하자 문제로 발생하는 입주민과 시공·시행사 간 분쟁이 매해 4000건 안팎으로 끊이지 않는다. 아파트 하자를 사전에 줄일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A아파트의 경우 입주를 시작한 지 4개월이 다 돼 가지만 문제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시공사는 실외기실 문 반대편 벽 쪽에 단열재를 설치하면서 설계 대비 공간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하고 입주 전 원래 설치 예정이던 편개형(문 하나로 열고 닫는 방식)이 아닌 양개형(문 두 개를 양쪽에 달아 열고 닫는 방식)으로 문을 달아줬다.

 

그러나 좁은 실외기실 면적 탓에 열기를 내뿜는 실외기 토출구(吐出口)를 실외기실 창과 완전히 맞출 수는 없었다. 이 때문에 실외기가 내뱉는 열기가 외부로 제대로 빠져나가지 못해 실외기실 온도가 올라가는 현상이 벌어졌다. B씨는 “문제가 발생한 가구는 한여름에 뜨거운 실외기가 열기를 배출하지 못해 고장이 났거나 불이 날 수도 있어서 걱정되는 상황”이라면서 “실외기실 문 자체를 옮기거나 창을 넓히는 개선책을 요구했음에도 시공사나 시행사 모두 별다른 조치를 해주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시공사 관계자는 “시공에는 문제가 없고 설계상 문제로 판단했다”며 “현 상황에서 이 문제 관련 책임 소재를 따지려면 법적 검토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교통부는 이런 아파트 하자 분쟁을 조정하기 위해 하자심사·분쟁조정위원회를 운영 중이다. 이 기구에 접수된 하자 분쟁 건수는 2015년 4244건, 2016년 3880건, 2017년 4087건, 2018년 3819건 수준이었다.

 

일각에서는 아파트 하자 분쟁이 끊이지 않는 원인은 공동주택 특성상 완공 전 분양이 진행되는 선분양 방식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완성품을 꼼꼼히 살핀 뒤 구매를 결정하는 일반 상품과 달리, 아파트를 살 때는 거금을 지출하고도 계약 후 한참 지나서야 완공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공공주택 중심으로 일정 수준 시공 후 분양을 진행하는 후분양제를 확대하는 중이다.

다만 후분양제는 민간주택에 전면 적용되기엔 시장 구조상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 대안으로 최근에는 공동주택 품질검수제도가 거론된다. 전국 지자체가 전문가로 구성된 공동주택 품질검수단을 설치해 시공 중 검수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일부 지자체가 이 제도를 운용해 성과를 내면서 정부·국회에서 전면 확대를 추진하는 중이다.

 

최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정동영 민주평화당 의원은 공동주택 품질검수제도 시행을 골자로 하는 주택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정 의원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전문가가 골조공사 단계부터 아파트의 품질 결함이나 하자를 점검할 수 있어 부실시공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