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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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영국 작가 책입니다!” ‘일본상품 불매운동 방지’ 띠지 씌운 출판사

‘사실은 영국 작가 책입니다! 라프카디오 헌(고이즈미 야쿠모) 띵작(명작의 은어)!’

 

출판사 허클베리북스가 출간한 책 ‘골동기담집’의 띠지 내용이다. ‘일본상품 불매운동 방지용 특별커버’라고 적힌 이 띠지는 출판사가 지난달 초 출간한 이 책에 최근 새로 씌운 것이다. 기존 띠지에는 ‘일본 환상문학의 전설적 명저’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책 ‘골동기담집’가 띠지를 바꾸기 전(왼쪽)과 후 모습. 허클베리북스 제공  

출판사 설명에 따르면 이 책 저자인 라프카디오 헌은 1850년생 영국 출신으로 1890년 일본 땅을 밟은 뒤 1896년 귀화한 인물이다. 그의 일본어 이름이 고이즈미 야쿠모다. 책 ‘골동기담집’은 일본 환상 문학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이 작가의 문학 세계를 집약한 단편집이다.

 

허클베리북스 반기훈 대표는 6일 “애초 기획 단계에서 작가가 일본 정서를 세계에 알렸던 사람이니 일본 이름으로 저자를 표기하는 게 맞지 않나 해서 고이즈미 야쿠모로 적었는데 최근 반일 정서가 높아지면서 판매량 영향을 체감해 긴급회의를 했고 띠지 갈이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조심스럽지만, 현 상황에서 우리가 ‘반일’을 넘어 ‘극일’로 나아가려면 이런 때일수록 일본 관련서를 많이 읽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게 저희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최근 일본이 한국에 대해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 제외 조치를 취하면서 한일관계가 얼어붙은 가운데 일본 문학이 전통적 강세를 보였던 출판계에도 그 영향이 미치는 모습이다. 허클베리북스의 경우처럼 확산하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을 의식해 마케팅 전략을 바꾸거나 아예 일본 문학의 경우 출간 자체를 무기한 연기하는 경우도 나타나고 있다.

 

출판사 마음산책이 일본 평론가 쓰노 가이타로의 책 ‘독서와 일본인’ 출간을, 일본 장르소설 전문 출판사인 북스피어도 신인 작가 소설 출간을 미룬 것으로 알려졌다. 출판사 은행나무는 일본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 ‘공중그네’ 10주년 기념판 출간을 미뤘다. 비채도 책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로 호평 받은 작가 마쓰이에 마사시 초청 행사를 계획했다 최근 연기를 결정했다.

 

출판계 관계자는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많은 출판사가 예정됐던 일본 소설 출간을 늦추는 모습“이라며 “당분간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승환 기자 hwa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