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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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 세상을 바꾼다”… 그들 꿈은 실현될까

덴마크 3인 작가그룹 ‘슈퍼플렉스’ 이색 전시회 / 파산한 은행들·럭비공 같은 가상화폐 / 우리 시대 자화상들 비판적으로 표현 / 현대 사회 속 작가 역할 끊임없이 고민 / 작품 통해 삐뚤어진 舊경제 대안 제시
‘2011년 12월27일 신한금융그룹에 인수된 토마토저축은행’ 가로 20.4m, 세로 2m의 검정 패널 위로 은행의 이름들과 날짜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2008년 전세계를 덮친 금융위기 이후 파산한 세계은행과 이를 인수·합병한 은행들이다. 지난 14일부터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전시 중인 덴마크 3인 작가 그룹 슈퍼플렉스(SUPERFLEX)의 작품 ‘파산한 은행들(Bankrupt Banks)’이다. 세계 금융권의 구조조정 연대기라 할 수 있다. ‘희망’ ‘믿음’ ‘빛’ 등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 은행 이름들이 씁쓸히 다가온다.

 

반대편에는 부실 은행들의 로고를 회화의 형태로 번안한 작품들이 벽면을 메운다. 한때 권위와 신뢰의 상징으로 고안된 로고들이 실패한 권력구조의 초상이 돼 내걸렸다. 무슨 의미일까.

전시회장에서 만난 슈퍼플렉스의 야코브 펭거(51)와 비외른스티에르네 크리스티안센(50)은 “처음에는 패널 1장을 채울 것이라 생각했지만 17장에 달했다”며 “우리 삶은 경제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 마찰이 일어나 금융산업이 병들었고 시스템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사회의 거대한 권력이 우리 삶에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는 설명이다.

전시 제목 ‘우리도 꿈속에서는 계획이 있다(In Our Dreams We Have A Plan)’도 이 같은 메시지를 잘 함축하고 있다. 제목은 1976년 발표된 아바(ABBA)의 ‘머니 머니 머니(Money Money Money)’ 중 가사 한 소절을 차용한 것으로, 권력과 자본은 더 이상 개개인이 맞서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닌, 인류 전체가 당면한 위기라는 점을 시사한다.

부산 수영구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덴마크 3인 작가 그룹 수퍼플렉스의 야콥 펭거(왼쪽)와 브외른스테르네 크리스티안센이 개인전 개막을 기념하며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라스무스 닐슨은 개인 사유로 방한하지 못했다. 벽면에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파산한 은행들의 명단이, 앞에는 비트코인 가치 변동을 보여주는 조형물이 자리한다. 국제갤러리 제공

전시장 중앙을 가로지르는 조형물 ‘커넥트 위드 미(Connect With Me)’도 이러한 일환이다. 이 작품은 18개월의 기간 동안 급변하는 가상화폐 비트코인의 가치 변동을 그래프 형태로 시각화했다. 크리스티안센은 “‘파산한 은행들’이 금융기관이 책임지는 경제를 표현했다면, ‘커넥트 위드 미’는 개인이 책임지는 경제를 나타낸다”며 “가시적으로는 비트코인이 자유경제의 유토피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실패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대안은 없을까. 슈퍼플렉스는 ‘프리비어(FREE BEER)’ 프로젝트를 통해 ‘협업’과 ‘공유’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프리’는 무료가 아닌 자유의 의미로, 오픈소스의 개념을 실물 상품에 적용해본 프로젝트다. 전시장이 있는 복합문화공간 내의 수제 맥줏집 프라하993에서 프리비어를 마실 수 있으며, 공개된 프리비어 레시피로 이윤을 창출할 수도 있다. 저작권과 같은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구(舊)경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정보를 공유하는 신(新)경제의 개념을 표현했다.

오픈소스 개념을 맥주에 적용해 만든 수퍼플렉스의 ‘프리비어’. 국제갤러리 제공

슈퍼플렉스는 자신들의 작품을 ‘도구(tool)’라고 표현한다. “문화는 인간의 행동을 결정하는 양식이며, 우리의 역할은 함께 고민하고 움직일 것을 제안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작품은 이를 위한 도구입니다.”

 

부산=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