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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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범죄자도 가석방 해줘"… 수형자 헌법소원 '각하'

복역 중인 수용자 "강간죄는 가석방 대상서 배제… 부당한 차별" / 헌재, "가석방 기준은 교정당국의 재량적 조치"… 헌법소원 각하

“살인과 강도, 성폭력 범죄 등을 제외한 일반 형사범 2900여명도 특별사면 대상입니다.”

 

연말 문재인 대통령이 단행한 신년 특사 소식을 전한 어느 방송 뉴스의 문구다. ‘성폭력 범죄를 제외한’이란 표현이 이번에도 어김없이 들어갔다. 정부는 아주 오래 전부터 성폭력 범죄자를 사면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으며 이는 감형이나 가석방 같은 다른 형사정책상의 혜택들도 마찬가지다.

 

성폭력 범죄에 한해서는 이른바 ‘무관용’ 원칙이 제대로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여성을 강간한 혐의로 유죄가 확정돼 징역형을 선고받고 교도소에서 복역 중인 A씨는 특사는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으나 그래도 열심히 생활해 ‘모범수’로 인정받으면 가석방이라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한 줄기 희망을 품었다. 아니면 일반 교도소에 비해 시설이 좋고 처우도 훨씬 더 나아 통상 출소를 앞둔 모범수들이 수용되는 개방교도소로 이감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A씨의 바람은 좀처럼 이뤄지지 않았다. 성범죄로 복역 중인 수용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은 교정기관 안에서도 엄격하기만 했다.

 

이에 ‘부당한 차별’이라고 느낀 A씨는 지난해 11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그는 헌법소원 청구서에서 “강간죄로 처벌받은 수형자들의 경우 명시적인 법적 근거도 없이 개별 처우 등급, 생활 태도 등을 불문하고 일률적으로 가석방 심사 대상 및 개방교도소 수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며 “이러한 차별 행위는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해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청구서를 받아든 헌법재판관들이 검토해보니 A씨가 간절히 원하는 가석방이나 개방교도소 수용은 원하는 재소자들한테 ‘신청’을 받아 이뤄지는 게 아니었다. 순전히 교정기관의 교정정책 혹은 형사정책적 판단에 따라 가석방 또는 개방교도소 이감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교정당국의 ‘재량’이 폭넓게 인정되는 영역이란 뜻이다.

 

4일 헌재에 따르면 최근 재판관들은 A씨의 헌법소원을 ‘각하’했다. 각하란 헌법소원 청구의 법적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위헌 여부를 깊이 따져볼 것도 없이 그냥 심리를 종결하는 처분이다.

 

재판관들은 결정문에서 “수형자는 교정당국의 구체적인 가석방 처분 또는 개방교도소로의 이송 등이 있을 때 비로소 그에 해당하는 사실상의 이익을 얻게 될 뿐”이라며 “수형자에게 가석방이나 개방교도소로의 이송을 신청할 주관적 권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고 못박았다.

 

이어 “A씨와 같은 강간 범죄자들이 가석방 대상 및 개방교도소 수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하더라도 이는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되는 공권력 행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