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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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코로나19와 흡연

필자의 대학 연구실 가까이에는 야외 흡연실이 있다. 한때 누구 못지않은 골초였고 지금은 지역금연센터 운영을 주관하고 있기에 흡연 대학생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가끔 그들에게 다가가 금연클리닉 등록을 권하기도 한다.

그런데 코로나19 유행 이후의 흡연실 모습을 보며 필자는 흡연 심리와 금연의 중요성에 관한 여러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이를테면 흡연자 역시 마스크를 생명벨트처럼 소중히 다루고 있다. 당연하다고 할 수 있는 현상이지만 흡연자들의 특이한 심리 특성이기도 하다.

이훈재 인하대 의대 교수

코로나19의 맹렬한 위세 앞에 인류 전체가 바짝 움츠려 있다. 하지만 코로나19의 실제 위력은 흡연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현 시점을 기준으로 코로나19 확진자는 전 세계 720만명가량되며, 그중 41여만명이 사망하였다. 이에 반해 흡연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만성 질환을 유발하며, 전 세계에서 매년 800만명을 죽게 만들고 있다. 게다가 흡연으로 인한 사망자 중 120만명 정도는 타인의 흡연에 의한 간접흡연 희생자인 것이다.

포스트 코로나19 시대에 더욱 중요한 가치로 ‘예방가능한 위험의 선제적 회피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책임 실천’이 부각될 것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흡연에 대한 낙관적 편견 해소와 간접흡연 행위의 비규범화 확산 요구도 훨씬 커질 것임은 자명하다.

우선은 흡연의 실제 위험과 체감 위험의 간극을 줄이는 것이 관건이다. 공중보건 위기소통 이론에 의하면 사람들은 스스로 선택한 위험, 자신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위험, 그리고 반복되어 온 익숙한 위험에 낙관적 편견을 갖거나 용인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흡연이 이런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실제 위험은 흡연이 코로나19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흡연자가 코로나19의 고위험군임을 강조하고 있으며, 우리 방역당국에서도 금연 실천을 강력 권고하고 있다. 그 때문인지 금연 실천을 주저하던 흡연자들이 코로나19를 걱정하여 금연캠프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런데 흡연자들은 기본적인 코로나 예방수칙을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 좁은 흡연실에 모이거나 실외에서 흡연하며 거리두기 수칙을 무시하게 된다. 흡연기구나 흡연실 환경을 통해 손 오염 기회도 많고, 흡연 중 손으로 얼굴을 자주 만지게 된다. 흡연자의 호흡기 점막세포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세포 내 유입을 촉진하는 수용체가 대폭 늘어나, 같은 조건에 놓이더라도 흡연자들이 더 쉽게 감염된다고 한다. 또한 호흡기 증상을 달고 사니 새로 나타난 증상을 그냥 넘기기도 쉽다. 흡연자는 코로나19에 걸릴 경우 비말 배출을 더 많이 할 수도 있고, 폐 조직과 기능 자체가 이미 망가져 중증상태로 빠르게 악화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코로나19와 흡연에 관한 사람들의 행동 특성을 보고 있자면 ‘끓는 물 속의 개구리’ 현상을 떠올리게 된다. 이는 처음부터 뜨거운 물에 개구리를 넣으면 깜짝 놀라 뛰쳐나가려 하지만, 서서히 데워지는 물에 들어가면 그 위험을 인식하지 못한 채 죽어가게 되는 현상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하등동물의 뇌기능 특성은 익숙한 위험에 대한 미인지 또는 낙관적 편견의 폐해를 강조할 때 자주 인용된다. 흡연은 편안함을 준다는 착각 속에 개구리를 죽도록 하는 냄비와 같다. 그래서 흡연을 치명적인 유혹이라고도 한다. 마스크에 의존하면서도 흡연을 지속하는 것은 모순이자 만용이기도 하다.

 

이훈재 인하대 의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