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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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는 대기업 얘기”… 中企 김대리 오늘도 ‘불안한 출근’

코로나 시대 근무환경 ‘서글픈 온도차’
대기업 70%… 中企 48%만 재택
유연근무제 실시 中企 30% 그쳐
55% “여건 안돼” 27% “업무 불통”
정부, 8만곳 비대면 환경구축 지원
사진=뉴시스

“저도 집에서 일하고 싶어요.”

서울 여의도의 한 중소기업에서 4년째 재직 중인 A(29)씨에게 재택근무는 ‘먼 나라 이야기’다. 그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후 재택근무를 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밀집하는 대중교통을 이용해 출퇴근을 하고, 점심도 외부 식당에서 먹어야 하는 탓에 항상 감염 우려를 안고 있지만 그렇다고 출근을 멈출 수는 없다.

그는 “요즘은 전화나 화상회의도 많이 한다는데 우리 회사 클라이언트(고객)들은 그렇지도 않다”며 “직원들은 재택근무를 하지 못하는데, 사장 혼자만 집에서 근무한 적도 있다. 우리도 진짜 재택근무를 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확산 및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 시행 등에 따라 대기업을 중심으로 재택근무가 활성화됐지만 시스템이 갖춰지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여전히 ‘위험 속 출근’이 일상화돼 있다.

정부가 이 같은 격차를 해소하고 중소기업의 재택근무 시스템 도입을 돕기 위한 지원책 마련에 나섰지만, 아직 중소기업 직원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해소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13일 취업포털 ‘인크루트’에 따르면 지난 7월 직장인 5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재택근무 실시가 직장인의 불평등을 확대한다’는 의견에 10명 중 8명(81.2%)이 동의를 표했다. 이 조사에서 대기업에 재직 중인 응답자의 70%가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를 실시했다’고 답했지만, 중견기업은 61.5%, 중소기업은 47.5%로 기업규모에 따른 재택근무 도입 격차가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 ‘사람인’이 지난달 말 기업 342개사를 대상으로 재택근무 등 유연근무제 실시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서도 ‘유연근무제를 실시한다’는 중소기업은 30.3%로 대기업(57.3%)의 절반 수준밖에 되지 않았다.

중소기업에 재직 중인 차모(27)씨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재택근무라서 편하다’는 글이 올라오는 것을 볼 때마다 위화감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며 “나만 빼고 다들 재택근무를 하는 것 같아 기운이 빠지기도 한다”고 말했다.

재택근무 도입 여부를 놓고 발생하는 기업규모·직군별 격차를 완화하기 위한 대안 마련을 촉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도 들을 수 있다.

 

지난 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형평성 있는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을 부탁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린 청원자는 “우리 회사는 올해 초 코로나 확산이 시작되었을 때도, 지금도 재택근무를 시행한 적이 없다”면서 “아직 많은 직장인들이 코로나19 감염 불안에 떨며 출퇴근하고 있다”며 대책 마련을 호소했다. 이외에도 ‘맞벌이 부부 1인 의무재택근무제’, ‘임산부 재택근무 의무시행’ 등 재택근무 도입 형평성과 관련된 청원들이 국민청원에 올라왔다.

중소기업 등은 회사 여건이나 여력 상 재택근무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사람인 설문 조사에서 유연근무제를 실시하지 않는 기업(218개사)을 대상으로 그 이유를 물은 결과 ‘제도 실시를 위한 여건이 안 돼서’(54.6%, 복수응답)가 가장 많았고, ‘타 부서, 협력사 등과의 협업에 문제가 생겨서’(26.6%), ‘업무가 많아 여력이 없어서’(16.5%) 등이 뒤를 이었다.

정부도 이 같은 중소·창업기업들을 위해 비대면 업무환경 구축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지원하는 ‘비대면 서비스 바우처 사업’ 예산을 지난 3차 추경을 통해 확보하고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원 예정 기업 수는 8만곳으로, 지원을 신청한 기업은 400만원 한도(자부담 10% 포함) 내에서 화상회의·재택근무 등 6개 분야의 비대면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이달 중 시범운영을 거쳐 본격적인 지원에 나설 방침이다.

 

이강진 기자 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