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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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양육’ 고된 현실 들춰낸 ‘아기 판매’ 사건

한부모가정 사회적 편견·부실 지원 개선 목소리
저소득층만 月20만원 지원이 고작
배우자 양육비 강제 징수 제도도
지난한 법정다툼 필요 실효성 작아

‘입양글’ 산모, 아기 보육센터 맡겨
경찰 “홀로 상황 감내, 고통 컸던 듯”

“조력자 없인 양육 힘든 시스템 탓
지원 늘리고 양육비 강제 강화를”

“아이를 팔아 무슨 이득이라도 보겠다는 건지 어처구니가 없었어요. 그런데 ‘한부모’가 돼서 혼자 감당해내는 일은 분명 어려운 일이긴 하죠.”

이혼 후 두 자녀를 홀로 키우고 있는 이모(33)씨는 ‘당근마켓 신생아’ 논란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이혼한 남편으로부터 양육비를 받지 못하고 있는 그는 해당 사건에 대해 분노를 느낀다면서도 미혼모가 앞으로 겪게 될 어려움에는 공감을 표했다.

20일 제주도는 중고거래 앱에 ‘아이 입양’ 게시글을 중고거래 사이트에 올려 논란이 된 미혼모 A씨의 아이를 전날 도내 한 보육 시설로 옮겼다고 밝혔다. A씨는 도내 한 산후조리원을 나와 미혼모 지원센터에 입소했다. 그는 본인도 벌이가 없는 상태라 자식의 양육을 위한 경제적 부담을 많이 느껴 이번 일을 저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A씨를 조사한 경찰 관계자는 “A씨 혼자 그간의 과정을 감내하느라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씨의 사정이 알려지면서 그의 잘못과는 별개로 미혼모를 비롯한 한부모 가족에 대한 경제적 지원과 사회적 편견이 개선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부모가족지원법에 따르면 월 소득이 152만원 미만인 미혼모의 경우 아이가 18살이 될 때까지 월 2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월 최저임금도 벌지 못하는 ‘가난한’ 미혼모일 경우에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양육 과정에서 겪게 될 경제적 어려움뿐 아니라 가족 등 주변의 지지를 받기가 어려운 사회적 인식 탓에 양육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지난 16일 오후 6시 30분쯤 한 중고물품 거래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에 36주 된 아이를 거래하겠다고 올린 글. 사진은 앱 사이트 해당 게시글 캡처 장면.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8년 한부모가족 실태조사’는 한부모가족이 양육에 얼마나 취약한 상태인지를 보여준다. 한부모가정의 세금과 사회보험료 등을 제외한 월평균 가처분소득은 219만6000원으로 이는 전체 가구 평균(389만원) 대비 56.5% 수준에 그쳤다. 직전인 2015년 조사 결과(58.0%)보다도 상대적으로 더 어려워진 상황이었다.

한부모 중 84.2%는 취업 중이지만 취업한 한부모들의 평균 근로·사업소득은 202만원이었다. 또 취업한 한부모 41.2%가 하루 10시간 이상 근무하고 주 5일제로 근무하는 한부모는 36.1%에 불과했다. 정해진 휴일이 없는 경우도 16.2%에 달하는 등 근무시간이 길어서 일과 가정 양립이 어려운 이들이 많았다.

상황이 이런 만큼 부모 모두에게 양육 책임을 지도록 하는 제도 정비가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5월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사람에게 이행을 강화할 수 있는 ‘양육비 이행 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한 아동이 생존권을 위협받는 경우 국세를 체납한 것과 같이 보고 해당 금액을 강제로 징수할 수 있도록 했다.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 감치명령을 받고도 끝까지 돈을 주지 않을 경우 운전면허를 정지·취소할 수 있도록 하기도 했다. 다만 양육비 이행을 강제하기까지 지난한 법정 다툼을 벌여야 하는 데다가 감치결정까지 수년이 소요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혼모가 혼자서라도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겠다는 믿음을 주는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점이 가장 큰 문제”라면서 “양육비 지급을 강제하기 위한 제도가 개선되고 있다지만 여전히 법원의 판결에만 기대야 하는 실정이다. 양육비 이행강제수단과 한부모가족 지원 대상을 확대하는 추가적인 입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종민 기자, 제주=임성준 기자 jngm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