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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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시민들 꿈 앗는 범죄 수익, 안 될 말” [차 한잔 나누며]

‘검은 돈’ 환수 전문 이주형 검사
2020년 환수 공로로 모범검사 선발
‘범죄수익환수 TIP’ 책 펴내기도
투자사기·보이스피싱 등 피해 누적
2019년 추징금 환수 3%대 불과
“검·경, ‘수사기관’ 좁은 인식서
‘법집행 기관’으로 전환 필요”
이주형 검사가 지난 9일 대검찰청 사무실에서 범죄수익 환수 업무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남제현 선임기자

“수십억원을 횡령하거나 사기를 치는 중대한 범행을 저지르고도 범죄자들은 단 몇 년간의 수감생활만으로 출소하곤 합니다. 범죄수익으로 축적한 재산으로 아파트를 사고, 건설업체를 운영하며 온갖 명차를 몰며 회장님 소리를 듣습니다. 하루하루 돈을 버는 평범하고 선량한 시민 위에 돈으로 군림하면서 말입니다. 너무 화가 나지 않나요.”

이주형 검사(37·사법연수원 41기)는 지난해 부산지방검찰청의 ‘불법재산 추적·환수 TF’에서 근무하면서 쓴 책 ‘알아두면 쓸데있는 범죄수익환수 TIP’의 첫 머리에 이 같은 내용을 담았다. 지난 9일 대검찰청에서 만난 이 검사는 “정직하게 일해 돈 버는 사람이 행복한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라며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았고 화가 났다”며 범죄수익 환수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2019년 기준 확정 추징금 3조9922억원 중 실제 추징 집행이 이뤄진 금액은 2.76%(1103억원)에 불과했다. 투자 사기, 보이스피싱 등으로 범죄 피해가 누적되고 있지만 복잡한 환수 절차와 갈수록 교묘해지는 범죄수익 은닉 등의 이유로 범죄수익 환수율은 3%대에 머물고 있다.

이 검사는 지난해 부산지검 범죄수익환수 전담검사로 일하면서 2조원 규모의 금괴를 밀반입해 유죄 판결을 받은 일당의 차명재산을 추적해 77억원 상당의 수익권을 압수하는 등 범죄수익 환수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하반기 대검 모범검사로 선발됐다. 그가 쓴 책은 ‘알아두면 쓸데있는’이라는 가벼운 수식어와 달리 범죄수익의 개념을 시작으로 범죄수익환수까지 이르는 과정을 법리와 사례를 들어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다.

“범죄수익의 환수는 수사로 시작해 궁극적으로는 민사법적 영역으로 그 스펙트럼이 확장되기 때문에 ‘수사’의 영역을 넘어서게 됩니다. 검경이 ‘수사기관’이라는 좁은 인식에서 벗어나 ‘법 집행 기관’으로서 폭넓게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검사는 지난해 2월 범죄수익 환수 전담 업무를 본격적으로 맡으면서 사법연수원 수료 후 민사법을 다시 공부하게 됐다. 그는 “예전부터 우스갯소리로 민사지식을 통달하여 사법연수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한 연수생이 검사가 되면 민사지식은 다 까먹고 형사법만 아는 반쪽 법조인이 된다고 했다”며 “6년 넘게 검사로 일하다 보니 민사적 지식이 거의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검사는 민사법에 밝지 않아도 흠이 되지 않았지만 민사 법률에 밝은 검사가 국가를 대리해서 소송에 나서야 의미 있는 결과도 만들 수 있고 공익에도 보탬이 된다는 생각에 주석서와 재판의 지침서로 꼽히는 법원실무제요 등을 찾아보면서 다시 공부했다”고 밝혔다. 이 검사는 ”범죄수익 환수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가 제3자의 이름으로 은닉한 차명재산을 찾는 것”이라며 “대물 강제처분을 위해서는 민사적인 ‘권리의 귀속’ 판단이 중요한 쟁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형사법이 아닌 민사법에 따른 각종 소송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민사법 지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범죄수익 환수 업무를 하면서 검찰과 검사의 역할에 대한 생각도 바뀌었다. 그는 “예전에는 검사의 역량을 사람을 몇 명 구속하는지로 판단했다. 구속해 처벌하면 그것이 실체적 정의가 실현된 것처럼 생각했다”며 “그러나 인권과 불구속 수사의 원칙에 발맞춰 이제는 물적 처분에 중심을 두고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검경의 노력으로 유죄판결을 끌어내더라도 추징금을 환수하지 않으면 흰 종이 위에 까만 잉크일 뿐”이라며 “그동안은 국가가 원고로 나서서 어떻게 하면 범죄수익을 환수할지, 방법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질적인 범죄수익 환수 활성화를 위해 이 검사는 민사집행 영역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조직·인력 확충을 강조했다. 지난해 11월 부패재산몰수법의 시행령·시행규칙이 시행되면서 범죄단체와 보이스피싱·다단계 등의 범죄에서는 국가가 피해 재산을 몰수·추징해 피해자에게 신속하게 피해금을 돌려줄 수 있게 됐고 그만큼 검찰의 역할이 커졌다. 이 검사는 “부산지검에서는 사건 배당에서 면제된 덕분에 범죄수익 환수 업무에 몰두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한 개 검사실에서만 일을 맡았지만 보존, 환수, 송무까지 이어지는 업무의 흐름에 맞춰 내부 지침을 만든 뒤 인원을 확충해 TF를 꾸리게 됐다”며 “전국의 주요 검찰청에 범죄수익환수 전담부서와 사무국의 환수집행과 신설 등을 통해 민사집행 전문인력을 확충하자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라고 밝혔다.

 

이창훈 기자 corazo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