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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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억대 연봉자도 대출 받아 9억 이상 아파트 구입 ‘언감생심’

규제에도 집값 오르고 규제로 집 못 사
서울 거주 40대 가구 무주택비율 47%

6억 넘는 아파트에 DSR 40% 새 규제
주담대 외 추가대출 1억 넘기 힘들어

11억 집 4억4000만원만 주담대 가능
‘LTV 40%룰’ 부모찬스 없이 집 못 사
고소득자도 강남구는 접근 불가 지역

얼마 전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40대 전세세입자의 애환 담긴 글이 올라왔다. 청원인은 “무주택이지만 집을 1채라도 사려는 지금까지 소외된 40세대들을 생각하시고 정책을 만드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정부가 각종 대출 규제 등을 동원해 집값 잡기에 나섰지만, 집값만 오르고 무주택 실수요자는 규제로 집을 사기 더 어려운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23일 세계일보가 서울 등 5대 도시 거주 40대 소득자 가계의 분위별 소득·자산 현황과 서울의 부동산 시세, 오는 7월부터 시행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 정책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결과, 전체 국민 가계 소득을 5등분으로 나눴을 때 소득 상위 20%에 해당하는 5분위 가구조차 ‘영끌’을 해야 서울의 9억원 이하 아파트를 구매할 수 있고, 4분위 이하 가구는 신용대출을 포함한 은행 빚만으로는 서울 전 지역의 아파트 구매가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 무주택 40대, 국가통계보다 자산 적어

국가통계포털의 주택 통계를 종합해보면 2019년 기준 서울 40대 가구의 절반에 가까운 47%가 무주택자인 것으로 나타난다. 무주택 비율이 90%가 넘는 30세 미만이나 68%인 30대보다는 낫지만, 상당기간 경제활동을 해 왔음에도 가족을 부양하거나 노후 준비를 해야 하는 이들에게 ‘내 집’ 마련은 여전히 큰 숙제다.

현재 서울 60세 이상 세대주 가구의 60% 이상은 내집을 보유하고 있는데, 지금의 40대는 향후 60대가 되더라도 주택보유 비율이 상승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집 사기가 전보다 훨씬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서울 무주택 가구 40대의 현실 파악을 위해, 유사값으로 시중은행이 2020년 하반기 조사한 5대 도시 40대 무주택 소득자 348가구의 현황을 입수, 정부의 5분위 소득 경계값에 따라 분류했다.

그 결과, 소득 5분위별 △연간소득 △자산 △대출 △순자산(자산-대출)은 <5분위> △1억2500만원 △4억2500만원 △6500만원 △3억6000만원 <4분위>△6500만원 △2억2600만원 △5600만원 △1억7000만원 <3분위> △4900만원 △2억2300만원 △5200만원 △1억7100만원 <2분위> △3700만원 △1억4800만원 △5700만원 △9100만원 <1분위> △2400만원 △1억1900만원 △2200만원 △9700만원이었다.

 

부동산이 없는 40대 대도시 가구는 분위별로 소득 차이가 뚜렷했지만 순자산은 1·2분위와 3·4분위가 비슷했다. 또 물가가 높은 지역에 살고 있음에도 이들의 순자산 보유액은 정부 ‘2020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나타난 소득 5분위별 가구당 순자산 보유액에 미치지 못했다.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2020년 소득 5분위별 순자산은 △5분위 7억9400만원 △4분위 3억9400만원 △3분위 2억9200만원 △2분위 2억1500만원 △1분위 1억2000만원이다.

특히 고소득자일수록 정부 통계보다 자산이 휠씬 적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가구 자산 대부분이 부동산에 편중된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주택 보유 가구는 부동산 가격이 오르며 자산을 증식했지만, 무주택 가구는 그렇지 못했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울 마포구의 부동산중개업소. 연합뉴스

◆고소득자 집 사고 싶어도, LTV 막혀 ‘한숨’

자산이 부족한 상황에서 아파트를 사려면 돈을 빌릴 수밖에 없지만 은행의 문턱은 정부규제에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부 부동산 대책에 따라 현재 투기지역인 서울의 LTV는 40%다. 소득에 관계없이 아파트 가격의 40%까지만 주택담보대출(주담대)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연 소득 8000만원 이하의 실수요자와 생애 첫 주택구매자는 LTV가 50%로 높아지지만, 6억원 이하 주택만 해당한다. KB국민은행 리브부동산 4월 통계 기준으로 서울 25개 구 중 평균 아파트 가격이 6억원 이하인 곳은 없다.

LTV 대책에 이어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은 가계 부채 관리를 목적으로 DSR를 차주(대출자) 단위로 제한하는 정책을 추가로 내놨다. 이에 따라 오는 7월부터 서울을 포함한 전 규제지역에서 집값이 6억원을 초과하거나 신용대출이 1억원을 초과하면 차주 단위 DSR 규제(시중은행 40%)를 받게 된다. 연간 갚아야 하는 돈이 소득의 40%를 넘으면 안 된다는 얘기다. 이어 내년 7월부터는 총대출이 2억원을 초과할 경우, 2023년 7월부터는 총대출이 1억원을 초과할 경우 규제 대상이다. 신용대출 산정 기간도 점차 축소된다. 대부분의 대출을 규제하겠다는 것으로 당연히 아파트 구매에 영향을 끼친다.

5분위 고소득 가구가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기 위해 시중은행에서 주담대를 하면 DSR 규제가 바뀌어도 5분위 고소득자의 주담대 금액은 변화가 없어 실수요자는 큰 영향이 없는 측면도 있다.

5분위 가구의 대출은 LTV 40% 규정에 막혀 있다. LTV 규제에 따라 5분위 가구는 서울 11억원의 아파트를 살 때(30년 원리금균등분할 상환, 2.5% 이자) 4억4000만원까지, 7억5000만원의 아파트를 살 때는 3억원까지만 주담대를 받을 수 있다. 아파트 가격 상승폭과 무관하게 LTV의 덫에 걸려 항상 주택담보대출금은 집값보다 부족하다.

4분위 이하 가구는 LTV와 DSR의 영향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1분위 가구는 오는 7월부터 당장 서울 전 지역 아파트 구매 시 주담대 감소 영향을 받고, 다른 분위 가구들도 일부 아파트의 주담대 금액이 줄어들거나 신용대출 한도가 축소된다.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N서울타워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스1

◆그들은 왜 아파트를 살 수 없나

이제 정책 변화나 부동산 가격의 하락, 다른 재테크 없이 은행 대출만 이용해 4분위 이하 서울 무주택 40대 가구가 서울에서 자력으로 아파트를 사는 건 불가능하다. 천정부지로 치솟은 서울 아파트 가격보다 자산이 턱없이 적은 데다가 대출 규제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오는 7월 이후 소득 4분위 가구가 금천구 아파트를 산다고 가정했을 때, 주담대로 최대 금액은 5분위와 마찬가지로 LTV 최대 한도인 2억6800만원이지만 DSR 한도가 동시에 적용되기 때문에 신용대출 최대액(연봉 150%까지 대출 가능, 이자 4% 기준)이 7200만원으로 줄어든다. 아파트를 사려면 순 자산을 빼고 1억6100만원을 더 마련해야 한다. 3분위와 2분위 가구도 줄어든 은행 대출과 자산 외에 각각 1억9500만원, 3억100만원이 더 있어야 금천구 아파트를 살 수 있었다. 1분위 가구는 새 규제를 적용하면, 주담대조차 줄어들기 때문에 매입 자금이 3억7200만원이나 부족했다.

아파트 평균가격이 8억9700만원으로 9억원에 육박하는 동대문구의 아파트를 사는 건 당연히 더 어렵다. 4분위와 3분위는 3억5900만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지만 신용대출 최대한도는 새 DSR 룰에 걸려 각각 4900만원과 1400만원밖에 안 된다. 가진 자산을 탈탈 털어도 4분위는 3억1900만원, 3분위는 3억5300만원이 더 있어야 동대문구에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 2분위와 1분위는 말할 것도 없다. ‘부모 찬스’ 없이 자력으로 마련하기는 어려운 돈이다.

5분위는 그나마 사정이 낫다. 금천구 아파트는 주담대 외에 4300만원의 신용대출을 받으면 살 수 있고, 동대문구 아파트도 신용대출 한도에 육박하는 1억7800만원을 빌리면 구매 가능하지만, 대출 여부는 불확실하다. 설령 신용대출을 받아도 이자로만 연간 720만원의 부담이 늘어난다.

긍정적인 관측으로도 9억원 아파트까지가 사실상 5분위 가구가 구매할 수 있는 한도다. 5분위가 평균가 11억9000만원의 마포구 아파트 구매를 위해서는 주담대와 신용대출 외에 2억2200만원, 주담대가 되지 않는 평균가 19억6000만원의 강남구 아파트 구매를 위해서는 14억1500만원이 더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강남구는 40대 고소득자도 접근불가한 성이었다.

 

엄형준 기자 ti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