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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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엘살바도르의 비트코인

화폐 교란. 국가 흥망사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말기적 현상이다. 망할 즈음 화폐는 어김없이 혼란의 수렁에 빠진다. 왜 그럴까. 허물어진 재정. 정치권력은 흔들린다. 어찌 대응할까. 십중팔구 화폐를 남발한다. 물가 폭등은 이어지는 경제 현상이다. 급기야 재정난은 경제난으로 번진다. 역병처럼.

당백전(當百錢). 조선 고종 3년(1866) 흥선대원군 주도로 만든 엽전이다. 모양은 상평통보와 비슷하지만 무게는 5.6배다. 그것에 백 배의 가치를 부여했다. 경복궁 중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백전에는 말라 버린 나라 곳간의 실상이 훤히 드러난다. 그 후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민심이 들끓었다. 엉터리 돈으로 물가를 폭등시켰으니. 엉터리 정책으로 집값을 폭등시킨 지금과 똑같다.

장령 홍시형이 수년 뒤 올린 상소문. “호전(胡錢)의 폐해는 당백전보다 심합니다. 물가는 몇 곱절 뛰고, 여러 차례 풍년이 들던 기상도 날로 스산해져만 갑니다.” 호전은 청나라 돈이다. 물가가 뛴 것은 호전 때문일까. 믿음을 잃어 버린 조선 화폐. 백성은 이제 조선 돈을 버리고 호전에 의지한다. 이런 나라는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44년 뒤 나라 문마저 닫았다.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자국 법정 통화로 채택한다고 한다.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지난 주말 미국 플로리다에서 열린 ‘비트코인 콘퍼런스’에 화상 참석해 관련 법안을 의회에 제출한다고 했다. 확정되면 가상화폐를 법정 통화로 만든 최초의 나라가 된다.

괜찮을까. 이젠 세금도 비트코인으로 낼 수 있다. 널뛰기하는 가상화폐 가격. 재닛 옐런 미국 재무장관의 말 한마디에 또 폭락했다. 엘살바도르는 천당과 지옥을 오갈 각오를 한 걸까. 가격이 폭락하면 곧바로 재정위기가 찾아든다. 폭등하면? 세금 없는 천국이 될까. 세계 최빈국 엘살바도르. 가난의 굴레를 벗기 위해 비트코인에라도 의지하고자 하는 걸까.

암흑 속의 비트코인 세력은 무슨 생각을 할까. 엘살바도르 같은 곳을 먹잇감으로 삼는 것은 아닐까. 그들도 가상의 돈으로 현실 세계의 재산을 사고자 할 테니. 앞으로 어떤 공포 드라마가 펼쳐질까.

강호원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