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기시다 후미오 전 외무상이 당선됐다. 오늘 자민당 총재에 취임하고 다음달 4일 소집되는 임시국회에서 100대 일본 총리로 선출된다. 그간의 정치행보 등을 볼 때 ‘리틀 아베 정권’과 비슷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기시다가 당내에선 온건한 역사인식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국교수립 이후 최악인 한·일 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 있다는 기대 섞인 전망도 나온다.
기시다는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와 외교 노선을 같이하는 인물이다. 선거기간에 독도 문제와 관련해 “다른 나라가 독도를 한국 영토로 인식하지 않도록 일본으로서 정보를 발신해야 한다. 여러 가지 행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할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강경 발언으로 들리지만 다른 파벌들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선거용이라는 지적도 있다.
기시다가 아베 정권에서 4년 8개월간 외무상을 지낸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는 외무상으로 재임하던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에 서명했다. 한국과의 협의 과정에 적극 나서면서 위안부 합의에 신중했던 아베 총리를 설득했고,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위안부 문제는 군의 관여 하에 다수 여성의 명예와 존엄에 깊은 상처를 입힌 문제로서 일본 정부는 책임을 통감한다”고도 했다. 다만 위안부 문제와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문제에 대해 “한국이 국제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기존 일본 정부 입장을 고수한다. 자민당 정조회장을 지낼 때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관련해 “정치·외교문제화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한 점도 긍정적 신호로 읽힌다.
궁극적으로 한·일 간 현안은 과거사 문제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 기자회견과 3·1절 기념사에서 “박근혜정부 시절인 2015년도 양국 정부 간 위안부 문제 협의가 공식 합의였다는 점을 인정한다”면서 “과거사는 과거사고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하는 것은 그것대로 해나가야 한다”고 했다. 만족스럽지 않지만 외교적 합의로 인정한 것이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추가적인 조치도 요구한 셈이다. 지금 한·일 관계는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한·일 정상이 반전의 계기를 찾지 못하면 수렁에서 헤어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기시다 총리 시대에 한·일간 대화 기회가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일본이 ‘새로운 해법’을 내놓길 기대한다. 그래야 한·일 관계에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