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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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이 끌고 정부가 민다…윤석열정부 ‘Y노믹스’ 청사진 제시

尹정부 국정과제 발표

경제정책 기조 민간 중심 전환
규제 완화·시장 활성화에 방점
“성장·복지 선순환 시스템 지향”
임대차법 폐지 등 중장기 검토
1기 신도시 재개발 특별법 제정
10만호 이상 공급할 기반 마련

국정과제 ‘文정책 뒤집기’ 공식화
여가부 폐지 명시는 안 됐지만
‘성평등 컨트롤타워’ 기능 삭제
安 “정부조직 개편 미뤘기 때문”

‘재정준칙 제도화’ 내세웠지만
기초연금 인상 등 예산 더 들어
재정건전성 해칠 가능성 높아

민간 분야까지 확대 검토 방침
병사 월급 200만원은 ‘일보후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삼청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전체 회의에서 안철수 인수위원장에게 인수위가 준비한 국정과제를 전달받고 있다. 뉴시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는 3일 윤석열정부의 경제 청사진으로 ‘민간 주도 성장’을 제시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이니셜을 딴 ‘와이(Y)노믹스’는 문재인정부의 정부 중심 경제정책인 소득주도성장과 달리,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뒷받침하는 ‘친시장 경제’ 조성이 핵심이다.

 

인수위는 윤 당선인의 부동산 공약이었던 임대차 3법 폐지, 재산세·종합부동산세 통합 등에 대해선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히거나 사실상 규제 완화 혜택 대상을 축소하면서 속도 조절에 나섰다. 선거 과정에서 강력하게 내세웠던 규제 완화 기조에 비해, 방향성은 같아도 시장에 미칠 충격을 고려하며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는 모양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이날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열린 국정과제 브리핑에서 새 정부의 산업정책에 대해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라고 소개했다. 안 위원장은 “대한민국이라는 커다란 수레가 있다고 할 때 정부의 역할은 뒤에서 밀어 주는 역할”이라며 “경제의 중심을 기업과 국민으로 전환해 민간의 창의, 역동성과 활력 속에서 성장과 복지가 공정하게 선순환하는 경제시스템을 지향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5년간 정부 중심에 방점이 찍혔던 경제정책 기조를 민간 중심으로 전환하고, 정부는 시장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고 규제를 푸는 역할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인수위는 △경제안보 강화 △민간 중심 규제 완화 △공급망 대응 강화 등을 ‘정부가 해야 할 과제’로 설정했다.

안철수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인수위에서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존 기업의 경우 불합리한 규제를 풀어 역량을 높여 주고 주력산업인 제조업을 디지털·그린 혁신으로 고도화해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구상이다. 반도체·인공지능(AI)·배터리·바이오·디지털헬스 등 ‘미래 먹거리’는 전방위적으로 지원할 계획이다.

 

‘공정한 경쟁 환경’ 조성 방안으로도 시장경제 활성화를 내세웠다. 인수위는 기업의 시장 진입과 사업 활동을 제약하는 경쟁 제한적 정부 규제를 없애고, 기업 혁신과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인수합병(M&A) 심사를 신속화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전력이 독점한 전력시장도 ‘경쟁·시장 원칙’을 토대로 개편하기로 했다.

 

공급망 위기 대응을 위한 ‘산업공급망 위기경보시스템 및 종합지원체계’를 구축하고, 공급망 안정을 위해 국내 기업의 복귀(유턴), 외국인 투자 유치도 확대한다.

 

부동산 시장 정상화 방안으로도 규제 완화 기조를 내세웠지만, 윤 당선인의 대선 공약보다는 후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수위는 재산세·종부세 통합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하고, 윤 당선인이 폐지하겠다고 밝힌 ‘임대차 3법’에 대해선 “시장 혼선을 줄이고, 임차인의 주거 안정 등을 고려해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세제와 관련해서도 혜택 수준이 공약보다는 다소 축소됐다. 윤 당선인은 1주택자 취득세율을 단일화하고 생애 최초 주택 구입자의 취득세를 면제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국정과제에선 ‘생애 최초로 취득한 주택에 대한 취득세 감면을 확대하고 다주택자 중과를 완화하겠다’고 했다. 최근 논란이 일었던 1기 신도시 재개발과 관련해선 ‘1기 신도시 특별법’을 제정해 10만호 이상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인수위가 부동산 공급과 세제·금융을 망라한 새 정부 부동산 정책을 취임 이후 발표하겠다고 한 만큼 각각에 대한 구체적 내용은 추후 공개될 예정이다.

안철수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 3일 오전 서울 종로구 통의동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110대 국정과제 발표 기자회견에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원전 탄소중립 수단 활용·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3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윤석열정부 110개 국정과제 중엔 문재인정부 핵심 정책인 탈(脫)원전, 주 52시간 근로제 등을 폐기하거나 뒤집는 내용이 상당수 포함됐다. 정부조직 개편을 지방선거 이후로 미룬 만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주요 대선 공약인 여성가족부 폐지가 국정과제에 명시되지 않았으나, 대신 여가부의 ‘성평등 정책 컨트롤타워’ 기능을 삭제한 점이 눈길을 끈다.

 

인수위는 탈원전 정책 폐기를 세 번째 국정과제로 올리며 추진 의지를 강조했다. 윤석열정부는 에너지 안보와 탄소중립 실현 수단으로 원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앞서 인수위는 신한울 3·4호기 건설의 조속한 재개와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달성, 미국과 원전 동맹 강화, 미래 원전 기술 확보 연구개발(R&D) 집중 투자 등을 통해 원자력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최근 인수위가 운영 허가 만료 원전의 계속 운전 신청 기한을 수명 만료일 2∼5년 전에서 5∼10년 전으로 앞당겨 가동 중단 기간을 최소화하겠다고 발표했던 것도 세부 추진 계획으로 담겼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1년 12월29일 경북 울진군 신한울 3·4호기 건설중단 현장을 방문해 ‘탈원전 정책’ 전면 재검토와 신한울 3·4호기 건설 즉각 재개 등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울진=연합뉴스

51번째 국정과제인 ‘노사 협력을 통한 상생의 노동시장 구축’ 가운데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도 현 정부 정책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윤 당선인은 대선 때부터 유연근로제 강화를 주장해 왔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현행 3개월인 선택적 근로시간제 정산 기간 확대와 스타트업·전문직 근로시간 규제 완화 등이 명시됐다. 선택적 근로시간제는 노사 합의 아래 정산기간 평균 ‘일주일 40시간(연장근로 포함 52시간) 근로’를 허용하는 제도다. 일이 몰릴 때 주당 근로시간 규정을 지키지 않고 미래의 근로시간을 당겨 쓸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도 공식화했다.

 

개별 국정과제로 명시되진 않았지만, 정부조직 개편에서 폐지될 것이 유력한 여가부는 성평등·여성·가족 정책 주무부처로서의 위상을 상실할 것으로 보인다. 그간 여가부가 주관했던 젠더폭력 방지, 성범죄 피해자 보호, 여성 고용 및 창업, 저출생 대응, 청소년 정책, 다문화가정 지원 등 업무가 법무부,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타 부처들과 협업이나 아예 타 부처 소관 업무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이날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국정과제에 여가부 폐지가 포함되지 않은 게 정부조직 개편을 미뤘기 때문이라면 왜 (역시 현 정부 조직체계에 없어 개편이 필요한) 항공우주청 신설은 실천과제에 들어가 있느냐’는 질문에 “일단은 현 정부조직을 그대로 물려받아 운영하면서 실제 어떤 문제가 있는지, 어떻게 하면 국민을 위해 더 좋은 개편안이 마련될 수 있는지 점검하는 기간으로 삼겠다는 의도”라고 설명했다.

 

◆현금성 ‘퍼주기 공약’ 대거 포함 논란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3일 발표한 국정과제에는 재정준칙 도입이 반영됐지만, 동시에 재정 건전성을 해칠 수 있는 각종 현금성 공약이 대거 포함됐다. 국가채무가 1000조원에 달하는 상황에서 현금성 공약 등을 포함한 209조원의 국정과제 이행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가 관건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임기 1년 내 재정준칙 도입 공약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인수위는 이날 윤석열정부 110대 국정과제에서 ‘민간주도 성장을 뒷받침하는 재정 정상화 및 지속가능성 확보’를 제시하면서 “재정준칙 제도화와 지출 효율화 등을 통해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인수위는 정부 예산 편성부터 구속력 있는 재정준칙을 수립하면서 경제 위기 등에는 탄력적 운용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국정과제에는 윤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내세운 각종 현금성 공약들이 담겼다. 현행 30만원인 65세 이상 고령층 기초연금을 40만원으로 인상하는 데에는 8조80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0∼12개월 아이에 대한 부모급여 월 100만원 지급에는 3조1200억원이 필요할 전망이다. 병사월급 200만원에 필요한 예산은 5조9000억원으로 예상된다.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 따르면 해당 3대 현금 공약 소요 재원으로 5년간 68조1000억원이 들 것으로 추정된다.

윤 당선인은 정부 출범 후 100일 이내에 50조원을 투입해 소상공인을 위한 코로나19 손실보상에 나서겠다고도 약속한 상황이다. 현금성 공약과 2차 추가경정예산안 등을 이행할 경우 국가채무비율은 확대될 수밖에 없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이날 국정과제 발표에서 재원 조달 방안에 대해 “우리나라 예산 600조원 중 반드시 지출해야 하는 경직성(의무지출) 예산이 300조원, 인건비가 100조원이 되기에 200조원가량은 어느 정도 용도 변경이 가능한 부분”이라며 “그중 10%를 구조조정하면 20조원 정도를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가 발전하면서 세수가 1년에 20조원 정도는 (늘어 추가로) 조달 가능하리라 본다”고 했다.

 

◆軍 복무기간 호봉 반영 단계적 의무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3일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서는 군 의무복무 기간을 호봉에 반영하는 방안을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내용이 담겼다. 병사 월급 200만원 공약은 2025년까지 목돈 지급 등의 방식으로 실현할 방침이다.

 

현재 군 복무기간을 호봉 산정에 포함하는 곳은 공무원 등 일부에 그치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이를 국가·공공기관부터 의무화를 추진하면서 향후 민간 분야까지 확대를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관련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제대군인법 개정도 이뤄질 전망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윤 당선인의 후보 시절 핵심 공약인 병사 월급 200만원 지급은 2025년 병장 기준으로 봉급에 자산형성 프로그램을 더해 월 200만원을 받는 방식으로 적용된다. 자산형성 프로그램은 병사들이 일정 금액을 적금으로 부으면 국가에서 일정액을 보전해 적립금액을 불려주는 방식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두고 매달 2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 원안보다 후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막대한 재원 마련과 초급 간부와의 월급 역전 현상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작용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현미·이강진·김주영·곽은산·박수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