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이 614억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는 직원의 아파트를 가압류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수사와는 별도로 우리은행이 횡령금 피해 복구 절차에 본격 착수한 것으로 풀이된다.
4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중앙지법 송혜영 부장판사는 지난 2일 우리은행이 “614억원을 횡령한 직원 A씨 소유 아파트를 가압류하게 해달라”는 신청을 받아들였다.
우리은행은 횡령사건이 터지고 난 뒤 A씨가 소유한 서울 광진구 소재 아파트에 대해 가압류를 신청했다. A씨는 이 아파트를 2016년 10억여원에 매매했는데, 당시 3억원가량을 대출로 충당한 것으로 보인다. A씨 소유 아파트 등기부등본엔 채권최고액이 3억6000만원으로 기록돼 있다. 채권최고액은 통상 대출의 120% 수준으로 설정된다. 7억여원은 대출 없이 직접 지불한 셈이다.
해당 아파트 시세는 6년새 2배 정도 훌쩍 뛰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해당 아파트 같은 평수가 21억1000만원에 거래됐다.
A씨가 집을 매매한 2016년 6월은 두 번째 횡령을 저지른 지 약 9개월이 지난 시점이다. A씨는 2012년 10월12일과 2015년 9월25일, 2018년 6월11일 세 차례에 걸쳐 총 614억여원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2년과 2015년에 각각 173억원, 148억원을 수표로 빼냈고, 2018년에는 293억원을 계좌이체 방식으로 빼돌렸다. 해당 횡령금은 대우일렉트로닉스 매각에 참여했던 이란 가전업체 엔텍합에 우리은행이 돌려줘야 하는 계약보증금이다. A씨는 횡령 당시 기업개선부 소속이었다.
경찰은 지난 2일 우리은행 본점과 A씨의 집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찰은 압수수색한 자료를 바탕으로 횡령 경위, 우리은행 내 공모자 존재 가능성 등을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또 A씨가 빼돌린 횡령금을 어디에 보관하고 있는지도 추적 중이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일부는 파생상품에 투자하고 일부는 동생이 하는 사업에 투자했지만 잘되지 않아 횡령금을 전부 날렸다’는 취지로 진술했지만, 경찰은 숨겨둔 횡령금이 있는지 살피고 있다.
한편, 금융권에서는 10년간 횡령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금융감독원과 우리은행 경영진 책임론이 확산되고 있다. 금감원은 2012년부터 2018년까지 우리은행에 대해 총 11차례 종합 및 부문 검사를 하고, 상시 감시시스템까지 가동했지만 횡령 사실을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 은행업계에서는 금감원이 주요 이슈에 대한 질책 사항을 적발하는 데만 중점을 두는 바람에 빚어진 일이란 의견도 있다.
금감원 내부에선 모든 걸 들여다보지는 못하고 기본 검사 시스템에 따라 샘플링만 해서 살펴봐야 하는 검사 특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수년에 걸친 거액의 횡령사건을 잡아내지 못한 만큼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금감원 검사 시스템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따른다. 감사원이 이달 중 금감원에 대한 본감사에 착수할 예정이어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도 관심이다.
우리은행 경영진의 책임론도 제기된다. 이원덕 우리은행장은 직원 횡령 시기와 겹치는 2017년 12월부터 2020년 2월까지 경영기획그룹장을 지내면서 내부회계관리를 맡았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번 사고는 금감원과 우리은행 경영진 등 수뇌부에 대한 책임론 제기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