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확대는 윤석열정부의 핵심 국정철학이다. 통제보다 자율성을 중시하는 게 자유주의 이념의 요체다. 윤석열정부의 주요 정책에는 이런 자유의 가치가 녹아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가치연대를 강화한 외교안보정책이 대표적이다. 경제정책에선 기업들을 옥죄는 규제의 혁파로 구현되고 있다.
그러나 대학 정책에선 자유주의 DNA를 찾기 힘들다. 교육부의 간섭과 규제가 여전하다. 최근의 대학 등록금 동결, 무전공 입학 확대 논란은 관치 교육의 폐해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대학 등록금 동결은 16년째 이어진다. 교육부가 공고한 올해 대학 등록금 인상률 한도는 5.64%이다. 하지만 등록금을 올리면 Ⅱ유형 국가장학금 지원을 받을 수 없도록 한 규제가 대학들을 소심하게 만든다. 교육부의 ‘동결 협조’ 권고는 사실상 지시임을 대학들은 경험으로 알고 있다. 서방 선진국에선 있을 수 없는 장면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소속 대학 총장들이 지난달 31일 등록금·국가장학금 연계 규제를 풀어 달라는 대정부 건의문을 채택했다. 시의적절하고 당위성이 충분한 문제 제기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 4년제 대학 실질 등록금이 2008년 대비 23.2%나 줄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한국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에서 최하위 수준이다. 회원국 평균의 67.5%, 미국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교육부가 다른 선진국만큼 대학교육비를 지원하지도 않으면서 등록금 인상을 막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산업 인재 양성은 한국 경제에 발등의 불이다. 허나 대학들은 돈이 없어 첨단 실습장비 구입, 유능한 교수 초빙을 위한 과감한 투자에 엄두를 내지 못한다. 교육부가 보조금을 무기로 자율성을 침해하는 한 대학 교육의 글로벌 경쟁력 추락은 불가피하다. 2022년 스위스 IMD 대학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이 63개국 중 46위에 그친 것만 봐도 그렇다.
대학등록금 동결은 학부모와 학생의 부담을 가볍게 한다. 정부와 여당의 선거 전략으로도 유용해 정책 변화가 쉽지 않다. 그러나 교육의 질 저하를 야기해 결국 학생에게 피해를 주고 국가경쟁력을 망치는 포퓰리즘 정책임을 직시해야 한다. 오죽하면 서강대 등록금심의위원회 회의에서 학생 위원이 “학생들도 좋은 교수님들께 우수한 교육 환경에서 수업을 받고 싶은 심정”이라며 “등록금 인상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한다”고 말했을까.
교육부는 2025년부터 20∼25% 이상을 무전공으로 선발하는 대학에만 대학혁신지원사업 지원금을 주겠다고 발표했다가 졸속 추진이라는 비판이 거세자 3주 만에 철회했다. 융합교육 추세와 시장 수요 변화에 맞게 대학 교육을 바꾸려는 시도는 긍정적이지만 인문학 고사와 인기 학과 집중에 대한 우려를 간과한 탓이다. 교육부가 재정 지원을 무기로 무전공 입학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관치 교육의 부정적인 단면이다.
김동원 고려대 총장은 “우리나라 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관치주의”라며 “이제 관치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계는 물론이고 공감을 표하는 국민이 많다. 교육부 공무원들은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본 경험이 없다. 부족한 대학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노심초사할 일도 없을 것이다. 대학 내부 문제를 잘 알지 못하는 제3자가 “나를 따르라”며 간섭하고 훈수를 두는 게 정상인가.
교육부는 지원은 하되 규제는 하지 말아야 옳다. 우리 대학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다. 한류가 세계인이 부러워하고 따라 하는 주류 문화로 자리매김하는 과정에서도 이것의 효력은 입증됐다. 한류의 선전은 한민족의 창의력과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 국가 정책이 시너지를 낸 결과인 것이다.
이제 교육부가 대학등록금 인상 문제를 대학 자율의 몫으로 넘겨야 할 때가 됐다. 대학등록금 현실화를 교육개혁의 주요 과제로 삼기 바란다. 무전공 입학 문제도 참여 여부와 규모를 대학들이 교내 사정에 맞춰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자유의 확대가 국정철학인 윤석열정부가 대학 자율을 제한하는 것은 자기모순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