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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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년째 '답장없는 편지'…“나중엔 참배할 사람도 없어 혼자서 너무 외로울 것 같다”

1991년 순직 故 전새한 이병
여든 넘은 아버지 애끓는 슬픔
“제가 없으면 참배할 이 없어
아들 곁 묻히는게 오랜 바람”

순직의무군경 1만6419명
韓 총리 “최고의 예우 보답”

“새한아, 너와 헤어진 지 벌써 32년이 되었구나.”

 

1991년 순직한 고(故) 전새한 이병의 아버지 전태웅씨. 그는 2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제1회 순직의무군경의 날 기념식에서 아들에게 쓴 편지를 읽었다. 전씨는 전 이병이 세상을 떠난 다음 해부터 매달 두 편씩 아들에게 편지를 써왔다. 세상을 떠난 게 아니라 아주 먼 곳으로 유학을 갔다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쓴 편지는 어느덧 1000통이나 됐다.

첫 순직의무군경의 날… 마르지 않는 눈물 제1회 순직의무군경의 날인 26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고(故) 이태석 이병 어머니가 아들 묘비 앞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대전=연합뉴스

전씨는 아들과 이별을 준비할 시간도 없었다. 당시 스무 살이었던 전 이병은 입대한 지 6개월 만에 사고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아들에게 인색했던 것,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했던 것 모든 게 후회로 남아 있다. 그는 이날 편지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 뒤늦게 이 말의 깊은 뜻을 알겠다”며 “아빠도 이제 80대 중반으로 머리가 하얗고 허리가 구부정하고 걸음걸이가 느릿느릿하여 50이 넘은 너를 가슴에 담고 있는데 네 몸이 너무 무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편지를 읽는 그의 눈시울도 덩달아 붉어졌다. 기념식이 끝나고 전씨는 기자에게 “나중엔 참배할 사람도 없어 혼자서 너무 외로울 것 같다. 아들 옆에 묻히고 싶은 게 오랜 바람이었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부터 병역 의무를 이행하다가 순직한 젊은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4월 넷째 주 금요일을 국가 기념일인 ‘순직의무군경의 날’로 지정했다. 가정의 달인 5월을 앞두고 순직의무군경의 희생을 기리는 동시에 가족을 잃은 유족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첫 번째 봄, 영원히 푸르른 당신을 기억합니다’를 주제로 거행된 이 기념식에는 한덕수 국무총리,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 등 정부 주요 인사와 순직의무군경 유족, 각계 대표 등 1300여명이 참석했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6일 오전 대전시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순직의무군경의날 기념식에 참석하여 추모의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스1

한 총리는 이날 기념사에서 “그동안 국군장병과 함께 의무경찰과 의무소방, 작전 전투경찰 순경과 경비교도대 등 여러 유형의 병역제도가 있었다”며 “모두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지키기 위한 고귀한 국가적 사명이었다”고 평가했다. 이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은 임무 중에 불의의 사고나 질병 등으로 목숨까지 잃는 청년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사랑하는 자식을 하루아침에 잃은 부모의 고통은 감히 헤아릴 수도 없다. 정부는 유가족들의 간절한 마음을 받들어 봄볕이 가장 따스한 4월의 마지막 주 금요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했다. 의무군경의 헌신을 최고 예우로 보답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라고 덧붙였다.

26일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순직의무군경의날 기념식에 참석한 유족 대표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순직의무군경은 의무복무 과정에서 직무수행이나 교육훈련 중 순직한 사병들로 현재까지 총 1만6419명이다. 순직군경의 날이 지정되기 전까지는 정부 주관 기념일이 부재해 대한민국 순직군경부모유족회 등을 중심으로 추모행사를 열어온 게 전부였다. 순직의무군경 대부분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기에 훗날 고인을 추모해주거나 묘소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유족도 많았다. 이에 정부는 지난해 ‘순직의무군경의 날 지정’을 골자로 하는 ‘각종 기념일 등에 관한 규정’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고 같은 해 11월 국무회의에서 의결됐다.


구현모 기자 li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