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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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성범죄 판치는데… 피해자 지원인력 ‘제자리’

디성센터 “일손·예산 확충 절실”

정확도 99% ‘DNA 검색’ 활용해
변형해도 피해 영상물 추적 가능
삭제 요청은 일일이 사람이 해야

2023년 27만건 지원… 1인당 7065건
인력은 4년째 39명 동결 ‘심각’
이마저도 일부 계약직으로 충당
“더 많은 지원 위해 조속 충원을”

“DNA 검색은 310개 성인사이트에서 디지털성범죄 피해 촬영물 유포 여부를 99% 이상 정확도로 검출합니다.”

 

디지털성범죄가 끊이질 않고 날이 갈수록 수법이 교묘해지지만, 피해자를 지원하고 가해자를 추적하는 기술 또한 고도화되고 있다. 뛰어난 기술력을 십분 활용하기 위해서는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의 인력과 예산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술을 이용해 디지털성범죄 피해 촬영물을 발견했더라도 삭제를 요청하는 일은 결국 ‘사람’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 중구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사무실 내부.

한국여성인권진흥원(진흥원) 디성센터는 11일 디지털성범죄 피해 촬영물 삭제 과정을 언론에 공개했다. 2018년 4월 센터 개소 후 첫 공개다. 센터는 피해자 보호를 위해 피해자 정보를 모두 가린 채 시연을 진행했고, 녹음이나 촬영도 금지했다.

 

센터가 피해 촬영물 삭제에 이용하는 핵심기술은 ‘DNA 검색’이다. DNA 검색은 310개 성인사이트에 게시된 사진·영상 중 피해 촬영물과 유사한 것이 있는지 찾아내는 기술이다. 촬영물 유포자가 원본을 흑백, 반전, 자막이나 워터마크 삽입, 배속 등으로 가공해도 99% 이상의 정확도로 촬영물을 검출할 수 있다. 해외 다른 국가들이 사용하는 해시(HASH) 기반 기술은 원본을 조금만 변형할 경우 검출할 수 없는 것과 대비되는 강점이다.

 

박성혜 디성센터 삭제지원팀장은 “해시는 ‘지문’ 인식과 같아서 원본과 완전히 동일한 촬영물만 찾을 수 있고, 변형됐을 땐 인식이 되지 않는다”며 “DNA 기술은 ‘유전자’ 개념으로, 촬영물에서 변형되지 않는 고유의 DNA를 추출해 유사성을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관건은 촬영물을 찾아내 삭제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다. 현장에서는 촬영물 첫 유포 후 3개월을 골든타임으로 보고 있다. 최초 3개월 동안 촬영물이 급속도로 유포되고 그 이후에는 속도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유포 초기에 신속하게 삭제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박 팀장은 “처음 커뮤니티 한 곳에 유포됐을 때 즉시 삭제한다면 추가 유포가 크게 줄어드는데, 시간이 지나 이미 많이 유포된 후에는 삭제에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고 말했다.

 

센터는 삭제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서는 예산과 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DNA 검색 기술을 이용해 사이트에서 피해 촬영물을 검출했더라도, 게시물을 한 번 더 확인한 뒤 각 사이트 운영자나 호스팅 사업자에 삭제를 요청하는 일은 센터 직원이 해야 한다.

 

센터는 삭제 요청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피해 촬영물이 게시된 사이트 운영자에게 삭제요청문을 자동으로 전송하는 시스템 구축을 계획하고 있다. 지금은 시스템에서 확보한 사이트의 사업자에게 일일이 삭제요청문을 전송해야 한다. 여성가족부는 내년에 자동 전송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는데, 이는 예산이 확보돼야 가능하다.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디성센터)’가 11일 서울 중구 한국여성인권진흥원에서 디지털성범죄 피해촬영물 삭제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인력 문제도 심각하다. 디성센터 인력은 2018년 4월 개소 당시 16명으로 시작해 2019년 26명으로 늘어난 뒤 올해까지 4년째 39명으로 동결된 상태다. 피해지원 실적(삭제지원, 상담지원, 수사·법률·의료지원)이 2018년 3만3921건에서 2019년 10만1378건, 지난해 27만5520건으로 훌쩍 뛴 것과 비교된다. 이에 따라 지난해 센터 직원 1명이 지원한 실적은 7065건에 달했다. 하루 20건꼴이다.

 

이마저도 1년 중 3∼6개월만 근무하는 기간제 인력의 손을 빌리고 있다. 센터는 2020년 정부가 ‘N번방’ 사건에 대응하기 위해 기간제 인력 50명을 센터에 급파한 이후 올해까지 39명의 인력 중 일부를 단기계약직으로 충당하고 있다.

 

하지만 기간제 인력은 업무의 전문성과 지속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12일 진흥원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 직무분석 연구’ 용역보고서에 따르면 정규직·무기직 1명의 업무실적은 단기계약직 2∼3인의 실적에 상응한다. 이에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2021년 한국의 디지털성범죄 현실을 분석한 보고서에서 한국 국회에 “디지털성범죄 피해자지원센터가 장기계약제로 직원을 채용하는 등 그 업무를 충분히 이행하도록 자원을 제공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조희연 기자 cho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