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위기그룹(ICG)이 전쟁 등 심각한 인도적 위기가 지속되는 곳을 지목하는 ‘올해 주목해야 할 10대 분쟁지’에 한반도가 처음 들어갔다. 북·러 밀착 심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복귀 등 예상 가능했던 위협 요소만으로 선정된 결과는 아니라고 평가된다. 계엄·탄핵 정국의 수렁에 빠진 국내 상황을 보는 해외의 시각은 국내의 평가보다 더욱 심각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2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이 단체가 2015년 시작한 올해의 분쟁지역 목록에 한반도(Korean Peninsula)가 들어간 것은 처음이다. 2018년 북한(North Korea)이 지목된 적은 있지만 한국이 위기 지역으로 평가된 사례는 없었다. ICG가 선정한 역대 분쟁지역을 보면 대체로 수년간 내전이 끊이지 않거나, 유혈 사태가 벌어지는 지역, 국가 간 갈등 구도가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경우 등이다. 우크라이나, 미얀마, 아프리카·중동 국가를 비롯해 경쟁이 매년 격화 중인 미국·중국 등이 여러 차례 목록에 오른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목록에 한반도가 새롭게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은 분명 염려되는 대목이다. 기존에도 한국 외교는 지정학적 민감성과 열강에 둘러싸여 딜레마 가득한 과제를 안고 있었는데, 앞으로 국제사회에서 관계 맺기나 협력 등에 더욱 난항이 예상된다.
ICG는 지난 수년간 고조돼 온 한반도에서의 위기감에 주목했다. 2023년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것, 2024년 북한군 파병 등으로 러시아와의 관계가 정점에 이른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과 정국혼란, 탄핵소추안 가결로 한 해가 마무리된 것을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변화로 인해 한반도는 2025년을 앞두고 긴장된 분위기가 감돌고 있다”고 한 뒤 트럼프 2기 출범까지 덮쳐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당선인이 주한미군 철수를 단행하진 않겠지만 “미국이 한국에 대한 방위 공약에 모호한 태도를 보인다면 김정은을 더욱 대담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고 내다본 ICG는 북한이 상황을 오판하고, 한국 내 정치적 혼란 등을 이용해 도발을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ICG는 한반도 외에도 △시리아 △수단 △우크라이나와 유럽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이란 대 미국과 이스라엘 △아이티 △미국과 멕시코 △미얀마 △중국과 미국을 올해 눈여겨봐야 할 분쟁지로 발표했다.
ICG는 “각 분쟁의 근본적 뿌리가 다르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혼란을 야기하는 요인을 일반화하는 것은 어렵다”면서도 “중국과 러시아, 어느 정도는 북한이 수십 년간 아시아와 유럽에서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유지됐던 질서에 도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세계는 패러다임 전환을 위한 준비가 돼 있는 것처럼 보인다”며 “문제는 그것이 협상 테이블에서 이뤄질 것인지 아니면 전장에서 이뤄질 것인지에 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재천 서강대 교수(국제대학원)는 “국내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바깥에서 계엄 사태를 훨씬 더 심각하게 봤다”며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으로 대표되는 ‘격변의 축’ 및 이들과 명운을 같이 하는 국가들이 핵 무력 폭주 기관차를 타는 국제 정치 관점에서 최근 안보 환경이 취약해진 한반도가 국제적 분쟁지역으로까지 비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