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는 '혼수상태'…의사결정체제 붕괴·대의민주주의 위기

선거구·법안 협상 올스톱…선거구 없는 '불법상태' 속수무책 방치
"'좀비'가 돌아다니는 최악의 무능국회"…들끓는 현역 물갈이론
"의견 부닥치면 가부간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태 지속"
여의도 정치권이 의식 불명의 '코마 상태'에 빠졌다.

국민의 의사를 대표해 협상하고 의사결정을 해야 할 국회가 '대의 민주주의' 기능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는 초유의 마비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모든 정치 협상이 사실상 중단됐고 각 정파의 지도부는 제 역할을 외면하는 등 '의사결정 시스템' 자체가 완전히 붕괴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선 4·13 총선을 불과 100일 남긴 4일 현재 선거구가 이미 법적으로 무효가 됐는데도 여야 모두 속수무책으로 이를 수수방관하고 있다. 법을 만드는 국회가 스스로 '불법'을 선도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이번 총선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로 독립해나간 선거구획정위원회는 정의화 국회의장이 '고육책'으로 획정 기준을 제시했음에도 사실상 손을 놓은 채 아무런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대로 가면 이번 임시국회 회기 마감일인 8일까지도 획정안을 국회에 넘기지 못해 '선거구 실종 사태'가 장기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지난 7월 출범한 제1기 획정위는 혈세만 쓰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활동을 마감할 수도 있게 됐다.

국회의 가장 본연의 기능인 법안 심의 역시 뒷전으로 밀려 있다.

주요 쟁점 법안 협상은 벌써 몇 달 째 쳇바퀴만 돌고 있고 여야 지도부는 정치력 부재 속에 성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모습이다.

임시국회가 나흘 남았지만, 각종 경제·노동 관련 법안은 이대로 가면 처리되기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 같은 현상들은 무엇보다 정치권 전체가 개인의 이익, 자파(自派)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치 이기주의에 기반한 공천 경쟁과 권력 다툼에 매몰돼 있기 때문이라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새누리당은 선거구 협상 대신 국민의 이해와는 사실상 전혀 상관없는 내부 공천 규칙 논의에만 몰두하면서 19대 국회 임기 말까지 국정의 틀을 주도해야 하는 집권 여당이자 다수당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

야권 역시 냉정하게 보면 문재인 대표가 이끄는 더불어민주당과 무소속 안철수 의원이 추진 중인 신당 등이 패권 경쟁을 벌이는 데에만 치중한 채 법안과 선거구 협상은 외면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새 정치'를 외치며 정치권에 진입한 안철수 의원 역시 최근 들어 쟁점 법안을 비롯한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해 구체적 견해를 밝히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게다가 정당간, 정파간에 논쟁을 벌이다 합의 조정되지 않을 경우 최종적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다수결 시스템도 합리적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과반수가 아니라 전체 의원 5분의 3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 국회선진화법 체제에 발이 묶여 국회는 중요한 쟁점 현안에 대해 어떠한 매듭도 못짓고 있고, 선거구 획정위도 여야 추천 위원 비율이 4:4 동수라는 틀에 갇혀 다수결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상태이다.

박형준 사무총장은 이날 TBS 라디오에 출연해 "국회가 법을 만드는 곳이고 가장 먼저 법을 준수하는 기구임에도 이렇게 초법적인 상황을 스스로 초래했다는 것은 국민에게 변명의 여지가 별로 없다"면서 "무책임 정치의 극치라고 비판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익명을 전제로 "19대 국회처럼 무능하고 정치력 없는 국회를 본 적이 없다"면서 "시체처럼 가만히 있으면서 혈세만 빨아먹는 '좀비' 300명이 여의도 의사당을 돌아다니고 있는 것 같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처럼 19대 국회가 막판 들어 사상 유례없는 '태업'을 하면서 현역의원 물갈이론이 다시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지난 1일 조선일보·동아일보·서울신문·한국일보·문화일보 등 중앙 일간지가 주요 여론조사 기관과 함께 발표한 신년 여론조사에서는 공통으로 현역 의원 교체를 바라는 의견이 현역 재당선을 지지하는 여론을 배 이상 압도했다.

한국일보-코리아리서치 조사(신뢰수준 95%±3.0%P)에서는 현역 의원 교체를 원하는 응답이 52.4%로, 현역 의원에 투표한다는 응답 22.2%를 압도했고, 서울신문-에이스리서치 조사(95%±3.09%P)에선 현역 의원 교체가 55.4%로 현역 재당선 19.1%보다 3배 가까이 많았다.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