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대가에게 듣는 2016 한국경제] "경제위기 본질은 '가계빈혈'… 소득 늘려야 저성장 벗어나"

릴레이 인터뷰 - ③ 박승 / 시장원리보다 공익 중시… 부동산 부양 반대 소신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의 좌우명은 선심후물(先心後物)이다. 물질보다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념적으로는 중도다. 시장경제부문에서는 확고한 시장주의자라는 점에서 보수적이지만 공공부문에서는 시장원리보다 공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진보적이라는 자평이다. 부동산 중심의 경기부양책을 반대하는 것도 이런 철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 전 총재는 부동산 중심 사회에 머물러 있는 한 어떤 경제성장에도 삶의 질 선진화는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박 전 총재는 부동산값 상승이 국민생활 빈곤화의 근본 원인이라는 생각에 이 제도의 도입을 대통령에게 누차 말씀드렸다고 한다. 노태우정부 시절 건설부장관으로 주택 200만가구 신도시 건설계획을 세우고 추진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한은 독립성과 같은 원칙과 가치를 지키는 일에는 대쪽같은 성품이다. 한은 총재 시절 정부에서 금융통화위원들에게 금리인상 반대를 주문했다는 소리에 당시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고함치며 항의한 일화는 유명하다.

“위기는 올해부터 시작될 겁니다.” 박승(80) 전 한국은행 총재의 새해 경제전망은 어두웠다. ‘2017년 위기설’에 대해 “내년까지 갈 것도 없다”고 말했다. 올해 가계부채 문제와 부동산경기 불황으로 위기국면이 시작될 것이란 얘기였다. 한국경제는 저성장 터널에 들어섰는데 미국은 금리를 올리기 시작했으니 거품이 꺼지기 시작할 수밖에 없다고 본 것이다. 박 전 총재는 “우리가 조금 늦게 올릴 수는 있더라도 결국 따라갈 수밖에 없다”면서 “속도는 완만해 당장의 충격은 적겠지만 2∼3년 뒤 금리가 3∼4%까지 올라가 있을 거란 점을 중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빚 내서 집 사라”로 요약되는 정부 경기부양책이 미국 금리인상을 계기로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는 셈인데, 박 전 총재는 “그래서 부동산 부양책을 반대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동산 중심 내수부양책에 대해 “당장 써먹긴 좋지만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정책”이라고 평했다. 이를 포함해 박근혜정부 성장정책을 ‘산업화시대부터 쓰던 고장난 엔진’에 비유했다. 성장 환경은 바뀌었는데 구닥다리 엔진을 쓰니 제대로 돌아가질 않는다는 거였다.

박 전 총재는 위기 탈출구로 ‘성장정책의 대전환’을 역설했다. 투자와 수출, 제조업이 성장을 이끌어갈 힘을 잃었으니 경제성장 정책을 기업투자 주도에서 가계소비 주도로, 수출 주도에서 내수 주도로, 제조업 주도에서 서비스업 주도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성장과 복지의 관계도 ‘선성장 후복지’에서 ‘양자 병행’ 체제로 바꿔야 하며 기업소득보다도 가계소득을 더 보호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전 총재가 ‘가계 보호’를 특히 강조하는 것은 작금 한국경제 위기의 본질을 ‘가계 빈혈’로 진단하기 때문이다. 박 전 총재는 “저성장이 문제가 아니라 성장을 해도 가계소득은 늘지 않고 가계부채는 누적되고 전·월세는 크게 올라 서민들이 먹고살기가 너무 어려워졌다는 것, 이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말했다.

●1936년 전북 김제 출생

●1954년 이리공고 졸업


●1961년 서울대 상대 졸업, 한국은행 조사역

●1974년 뉴욕대 경제학박사

●1984년 중앙대 정경대학장

●1988년 청와대 경제수석

●1988∼1989년 건설부장관

●2002∼2006년 한국은행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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