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비핵화'에 매몰된 정부… 핵개발 시간만 줬다

시험대 선 박근혜정부 대북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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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6일 4차 핵실험으로 박근혜정부의 대북·북핵 정책이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정부가 수차례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감행한다면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구도가 바뀌는 근본적 계기)가 될 것”(윤병세 외교부 장관)이라고 경고했으나 북한은 결국 핵실험을 강행했다.

정부는 그동안 북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 일본과 함께 ‘선 북한 비핵화 조치·후 6자회담 재개’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북한이 먼저 영변 핵 활동 중단과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 복귀 등과 같은 초기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북한과의 대화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는 원칙론이다. 이는 북한의 위협→합의→대규모 지원→북한의 합의 파기가 반복돼온 북핵 문제의 악순환을 끊겠다는 의도였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인 조태용 청와대 국가안보실 1차장이 6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북한의 4차 핵실험 강행에 대한 규탄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는 6자회담 문제가 한·미·일의 선비핵화·후재개 입장과 북·중·러의 즉각적인 재개 입장이 맞서 돌파구를 찾지 못하자 소위 ‘탐색적 대화’라는 방안도 들고 나왔다. 6자회담에 앞서 당사국(한·미·중·러·일) 중 일부가 북한의 비핵화 진위를 탐색한다는 구상이었으나 뚜렷한 성과가 나오지 않았다.

반면 김정은(국방위 제1위원장 체제)의 북한은 핵 개발 의사를 분명히 해왔다. 2012년 4월 개정 헌법 전문(前文)에 핵 보유국 지위를 명기했고, 2013년 3월엔 조선노동당 중앙위 전체회의에서 핵·경제 병진노선을 채택했다. 김 제1위원장이 직접 지난해 10월 당 창건 70주년 기념사에 이어 12월에도 수소폭탄 개발을 예고하기도 했다.

미국의 북한 전문 웹사이트 ‘38노스’가 지난해 12월31일(현지시간) 공개한 풍계리 핵실험장의 모습. 38노스는 같은달 12일 촬영된 이 위성사진을 판독한 결과 북한이 이곳에서 새로운 핵실험 터널을 만들기 위한 굴착공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위성에 포착된 터널 입구 위 덮개와 굴착용 수레 궤도 등으로 미뤄볼 때 이곳 서쪽 갱도에서 핵실험을 위한 굴착공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분석이다.
38노스 제공
결국 정부가 묘책도 없으면서 대화를 기피함으로써 북한의 핵 개발 시간만 벌어준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은 핵보유국으로서의 입장을 확정한 게 뚜렷한데 한·미·일은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지 않으면 대화를 하지 않겠다고 해서 프리핸드(자유 재량)만 줬다”고 지적했다.

대화가 중단된 상태에서 채찍 성격의 유엔 안보리나 미국 등의 제재도 큰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2008년 12월 6자회담 중단 후 대북 압박 정책이 북한의 비핵화를 견인하지 못하고 오히려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됐다”며 “비핵화 정책이 성공하려면 6자 간, 북·미 간 단계별 대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김준형 한동대 국제정치학부 교수는 “결과적으로 손을 놓고 있던 북핵 정책은 실패한 것”이라며 “북한의 핵무기를 당장 폐기할 수 없으니 일단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북핵 개발 동결을 한 뒤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발표 직후인 6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회의에서 “국제사회와 긴밀한 협력 하에 북한이 이번 핵실험에 대해 반드시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며 강력한 대응 의지를 천명했다.
청와대 제공
문제는 대화를 하더라도 북한의 핵 보유국 의도와 한국 등 국제사회의 한반도 비핵화 목표는 양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한의 핵 보유국 지위를 인정할 경우 핵확산금지조약(NPT) 질서는 붕괴될 수 있다. 특히 동북아의 경우 한국과 일본도 핵무장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봉영식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핵 문제의 본질은 북한이 미국과 군축회의를 할 정도의 핵보유국이 되겠다는 것”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독자적 레버리지(지렛대)를 갖는 것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보수 진영에서는 채찍질에 한계가 있으니 아예 북한의 체제 전환을 노려야 한다는 과감한 주장도 나온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정부는 비핵화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핵을 갖고 있는 북한 정권의 존속을 끝내는 것, 북한 레짐(체제)의 종식으로 (대북 정책의) 목표를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청중·염유섭 기자 ck@segye.com